<"지은 죄가 많아서…" 마약장수서 기부천사 변신
두차례 7년 수감…빈손 출소해 월 200만원 나눔실천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폭력ㆍ마약사범으로 두 차례 7년간 교도소 생활을 하다 마흔넷에 빈손으로 출소해서는 7년째 월 200만원을 꼬박꼬박 기부하는 사람이 있다.
9일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지부의 소개로 만난 정모(52)씨는 아무리 질문을 퍼부어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빙긋이 웃기만 할뿐 한사코 답변을 거부하다 기자의 집요한 요청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고교를 중퇴한 그는 소위 `어깨' 생활을 하며 유흥업소 주변을 떠돌다 폭력사건에 가담, 1985년 수감돼 징역 3년을 살았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린 그는 히로뽕에 손을 댔고 급기야 마약장사에 나섰다가 1999년 붙잡혀 징역 4년을 살고 2003년 출소했다.
정씨는 "출소 전 아내로부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라고 쓴 편지를 받았다"라며 "마흔 넘은 나이에 사회에 나와보니 먹고 자는 문제부터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막막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일단 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지부 생활관에 입소해 아홉 달 동안 숙식을 제공받으며 폐차대행 사업에 뛰어들었다.
방치된 차량이나 오래된 차량의 서류정리를 비롯한 폐차과정을 대신해 주고 이윤을 남기는 사업인데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이라 아홉 달 만에 1천90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은 출소 후 2년간 생활관에서 지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최장 아홉 달만 허락됐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재개발 예정 아파트로 옮긴 그는 생활관을 나서면서 1천900만원 가운데 10%인 190만원의 `거금'을 뚝 잘라 공단에 기부했다.
공단 경기지부 이주환 차장은 "그동안 1만명이 넘는 출소자를 봤지만 다들 자기 먹고살기 바쁘지, 정씨처럼 기부금을 내놓고 간 사람은 전무후무하다"라고 귀띔했다.
정씨의 아름다운 선행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장기수의 글을 우연히 읽고 구구절절한 사연에 감명받은 정씨는 그의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2년간 매달 30만∼4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청송교도소 시절 동생으로 삼은 무기수에게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과 영치금을 보내고 있단다.
이와 별도로 무허가 장애인시설에 매달 생필품을, 청소년 출소자들에게 검정고시학원 비용을 지원하고, 경기지부를 비롯한 7개 출소자 생활관에는 두루마리 휴지를 2003년부터 자비로 공급하고 있다.
쉽게 입을 안 열던 정씨는 이 차장이 옆에서 "다른 불우이웃도 도와주고, 형편 어려운 친척 학비도 내주고, 더 있잖아"라고 끼어들자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꾸 알려 해요. 그냥 여기저기 조금씩 돕는 게 매달 200만원 정도"라며 멋쩍게 웃었다.
잘 벌 때는 월수입 1천만원도 된다는 그는 하루 200여통의 전화통화를 한다는데, 인터뷰 도중에도 어디선가 걸려온 고객들의 전화를 끊임없이 받았다.
정씨는 "애들 셋 대학 보내고 누나네 생활비까지 주다 보니 돈이 안모이네요.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왜 다른 사람을 돕느냐'는 질문에 그의 낯빛이 순간적으로 살짝 어두워졌다.
"지은 죄가 많아서요. 조금이라도 갚고 살겠다는 마음인 거죠"라며 "제가 세상으로부터 도움받은 것도 갚으면서 살아야죠"라고 했다.
마약장수 시절 주변에 마약을 권유한 점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면 다시 마약을 할까 봐 당사자를 못 찾는 대신 베풀면서 산다는 그의 표정엔 과거 어두웠던 시절에 대한 회한이 짙게 배여 있었다.
2006년 합동결혼식을 통해 재혼가정을 꾸렸고, 주거지원 프로그램으로 4천여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었으며 2009년에는 창업지원금 5천만원을 받아 사무실을 내는 등 법무보호복지공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데 대한 은혜를 갚겠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정씨는 "출소자들이 정상적으로 살겠다는 의욕이 있고, 잘 나가던 과거 생각에 젖어 몸만 안 사리면 다 먹고살 방법이 있다"라며 "돈은 쓰는 만큼 들어오는 법이고, 어차피 안 모인다면 그냥 나누면서, 기분 내면서 그리 살겠다"라고 말했다.
noanoa@yna.co.kr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폭력ㆍ마약사범으로 두 차례 7년간 교도소 생활을 하다 마흔넷에 빈손으로 출소해서는 7년째 월 200만원을 꼬박꼬박 기부하는 사람이 있다.
9일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지부의 소개로 만난 정모(52)씨는 아무리 질문을 퍼부어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빙긋이 웃기만 할뿐 한사코 답변을 거부하다 기자의 집요한 요청에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러고도 정신을 못 차린 그는 히로뽕에 손을 댔고 급기야 마약장사에 나섰다가 1999년 붙잡혀 징역 4년을 살고 2003년 출소했다.
정씨는 "출소 전 아내로부터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라고 쓴 편지를 받았다"라며 "마흔 넘은 나이에 사회에 나와보니 먹고 자는 문제부터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막막했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는 일단 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지부 생활관에 입소해 아홉 달 동안 숙식을 제공받으며 폐차대행 사업에 뛰어들었다.
방치된 차량이나 오래된 차량의 서류정리를 비롯한 폐차과정을 대신해 주고 이윤을 남기는 사업인데 일한 만큼 벌 수 있는 직업이라 아홉 달 만에 1천90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지금은 출소 후 2년간 생활관에서 지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최장 아홉 달만 허락됐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재개발 예정 아파트로 옮긴 그는 생활관을 나서면서 1천900만원 가운데 10%인 190만원의 `거금'을 뚝 잘라 공단에 기부했다.
공단 경기지부 이주환 차장은 "그동안 1만명이 넘는 출소자를 봤지만 다들 자기 먹고살기 바쁘지, 정씨처럼 기부금을 내놓고 간 사람은 전무후무하다"라고 귀띔했다.
정씨의 아름다운 선행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장기수의 글을 우연히 읽고 구구절절한 사연에 감명받은 정씨는 그의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2년간 매달 30만∼4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청송교도소 시절 동생으로 삼은 무기수에게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과 영치금을 보내고 있단다.
이와 별도로 무허가 장애인시설에 매달 생필품을, 청소년 출소자들에게 검정고시학원 비용을 지원하고, 경기지부를 비롯한 7개 출소자 생활관에는 두루마리 휴지를 2003년부터 자비로 공급하고 있다.
쉽게 입을 안 열던 정씨는 이 차장이 옆에서 "다른 불우이웃도 도와주고, 형편 어려운 친척 학비도 내주고, 더 있잖아"라고 끼어들자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꾸 알려 해요. 그냥 여기저기 조금씩 돕는 게 매달 200만원 정도"라며 멋쩍게 웃었다.
잘 벌 때는 월수입 1천만원도 된다는 그는 하루 200여통의 전화통화를 한다는데, 인터뷰 도중에도 어디선가 걸려온 고객들의 전화를 끊임없이 받았다.
정씨는 "애들 셋 대학 보내고 누나네 생활비까지 주다 보니 돈이 안모이네요. 돈이 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왜 다른 사람을 돕느냐'는 질문에 그의 낯빛이 순간적으로 살짝 어두워졌다.
"지은 죄가 많아서요. 조금이라도 갚고 살겠다는 마음인 거죠"라며 "제가 세상으로부터 도움받은 것도 갚으면서 살아야죠"라고 했다.
마약장수 시절 주변에 마약을 권유한 점에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면 다시 마약을 할까 봐 당사자를 못 찾는 대신 베풀면서 산다는 그의 표정엔 과거 어두웠던 시절에 대한 회한이 짙게 배여 있었다.
2006년 합동결혼식을 통해 재혼가정을 꾸렸고, 주거지원 프로그램으로 4천여만원짜리 전셋집을 얻었으며 2009년에는 창업지원금 5천만원을 받아 사무실을 내는 등 법무보호복지공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데 대한 은혜를 갚겠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정씨는 "출소자들이 정상적으로 살겠다는 의욕이 있고, 잘 나가던 과거 생각에 젖어 몸만 안 사리면 다 먹고살 방법이 있다"라며 "돈은 쓰는 만큼 들어오는 법이고, 어차피 안 모인다면 그냥 나누면서, 기분 내면서 그리 살겠다"라고 말했다.
noano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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