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역뉴스

갈 곳 없어 노원구 주차장에 쌓인 방사능 아스팔트 330t

갈 곳 없어 노원구 주차장에 쌓인 방사능 아스팔트 330t

 [중앙일보]

갈 곳 없어 노원구 주차장에 쌓인 방사능 아스팔트 330t

내년 말 경주 방폐장 가동 때까진 노원구가 떠안고 살 판

19일 오전 서울 노원구청. 주민 100여 명이 전날 중국 출장에서 돌아온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에워쌌다. “저거(폐아스팔트) 어떻게 할 거예요. 주변에 여학교가 있는데 기형아라도 태어나면 책임질 거요.” 마스크를 한 40대 여성이 따지듯 물었다. 김 구청장이 “빨리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항의는 끊이지 않았다.

 노원구는 지난 17일부터 상계동 마들공원 내 폐쇄된 수영장 부지에 보관하던 폐아스팔트를 노원구청 뒤 공영주차장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공원 이용객들의 항의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주차장 부근 용화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노원구 월계동 907번지 일대에서 지난 1일 이상 수치의 방사능(1400n㏜)이 검출됐고, 구청은 방사능 물질인 세슘이 함유된 아스팔트를 철거하고 재시공했다.

 서울 노원구에 ‘방사능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가뜩이나 불안한 주민들은 엇박자 행정에 두 번 울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노원구가 해법을 찾지 못하면 경주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이 가동되는 내년 말까지 1년여간 노원구민들은 방사능 폐기물을 떠안고 살아야 할 판이다. 노원구 방사능 사태는 시작부터 ‘행정 무능’을 보였다. 방사능 이상 수치를 발견한 것은 정부나 구청이 아닌 방사능 문제를 추적해 온 시민이었다. 신고를 한 백철준(42)씨는 블로그를 통해 “처음 출동한 소방대는 (원인 물질을 찾아내는) 핵종분석기도 없이 선량 측정기만 한 대 가져와 우왕좌왕했다”고 지적했다.

 이후 조치도 따로 놀았다. 전문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정밀조사 결과 주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며 “일반인이 자연 상태에서 피폭되는 연간 평균 방사선량(3mSv)의 약 17~2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와 노원구는 즉각 철거로 방향을 잡았다. 주민들의 불안이 컸기 때문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4일 현장을 찾아 “주민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같은 시기(2000년)에 포장된 도로를 전수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처음부터 엇나간 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은 폐아스팔트 처리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노원구는 폐기물을 둘 곳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아스팔트부터 뜯었다. 노원구 관계자는 “지난 9일 한국원자력연구원 등에 처리 계획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인가와 떨어진 곳에 보관하라’는 조언만 받았다”고 말했다. 정부 기관들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 때문에 위험성이 낮은 물질까지 받을 여유가 없다.

 비용 문제도 골치다. 노원구는 폐아스팔트 보관·처리 비용으로 최대 61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월계동에서 뜯어낸 아스팔트는 330t이고, 이를 폐기물용 드럼통에 넣으면 최대 1200개가 필요하다. 드럼통 한 개당 510만원 안팎이 든다. 최근 드럼통을 만드는 특수소재의 가격 상승을 감안하면 총비용은 100억원에 육박한다. 노원구는 서울시와 정부 지원만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김숙현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사선안전과장은 “노원구에 ‘안전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전달했다”며 “관련 법령에 따라 서울시와 노원구가 비용 전액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기복 노원구의회 의장은 “주민을 설득하기보다는 무턱대고 아스팔트부터 걷어낸 것이 문제”라며 “이 와중에 구청장이 중국 자매 도시 방문(15~18일)에 나서 문제를 풀 사령탑마저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