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깔아뭉갠 악마성 VS ‘인간 삶’ 향상시킨 천재성
[중앙선데이] 입력 2011.10.30 01:55 / 수정 2011.10.30 06:39『스티브 잡스』 전기로 본 두 얼굴의 잡스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올가을 최고 베스트셀러에 올라선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전기작가의 힘을 빌려 남긴 삶의 기록이다. 그 삶의 기록에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려 온 잡스의 두 모습이 담겨 있다. ‘주위 사람들을 분노와 절망으로 몰아갔던’ 악마 같은 잡스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을 좋아했던’ 천재 잡스다. 잡스는 자신의 두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주변 사람을 때때로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나도 괴로웠다’고 하면서 동시에 ‘난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4일 국내에 출간된 이 책은 인터넷서점에서 기존 하루 최고 판매량인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을 뛰어넘으며 29일 현재 15만 부(출판사 기준)가 팔렸다. 중앙SUNDAY는 책에서 잡스의 천재성과 악마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추려 소개한다.
“그녀가 나하고만 잤겠나” … 자기 딸 낳은 여친 버려
잡스는 딸을 낳은 여자친구에게 매춘부 이미지를 씌운 남자였다. 91년 로런 파월과 결혼 당시 그는 이미 ‘리사(Lisa)’라는 딸을 둔 아버지였다. 여자친구 크리스앤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낳았다. 23세 때로, 친부 압둘라파 잔달리가 그를 버렸을 때와 같은 나이였다. 그들은 가끔 잠자리를 함께했고 브레넌은 임신했다. 잡스는 자신이 아기 아버지라는 것을 부인했다. ‘내가 유일하게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가 아닐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애플 창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통계적으로 미국 남성의 28%가 리사의 아버지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사가 자신의 딸인 것이 분명했지만 잡스는 브레넌에게 무심하고 냉담했다. 브레넌은 ‘스티브는 나를 매춘부로 몰아갔다.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까’라고 분노했다.
잡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했다. 애플 시절,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커서가 움직이는 마우스를 개발하라고 지시하자 담당 엔지니어가 ‘도저히 만들 수 없다’고 답했다. 잡스는 그를 다음 날 바로 해고했다. 픽사 시절 ‘해고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 줄 감정적 능력도, 재정적 여유도 없었던’ 잡스는 해고를 즉시 통보했고, 퇴직수당도 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직원들의 면전에서 ‘쓰레기’라고 혹평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남의 아이디어를 제 것인 양 가로채기도 했다. 같이 일하기 싫은 끔찍한 관리자였다. 애플의 기술문서 담당이었던 제프 래스킨은 81년 당시 사장인 마이크 스콧에게 ‘스티브 잡스와 함께, 또는 그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이란 글을 보냈다.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잡스는 생각 없이 행동한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곧바로 바보 같은 생각이라 헐뜯기 일쑤다. 만일 어떤 직원이 근사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게 자기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말하고 다닌다. 남의 말을 가로막고 끼어들기 일쑤며, 상대방 말은 듣지도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애플 직원들은 그런 잡스에게 당당하게 맞선 사람을 뽑아 서로 상을 주기도 했다.
그는 의리 없는 인간이었다. 80년 애플을 공개하면서 잡스를 포함해 300여 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하지만 오랜 친구이자 창업멤버인 대니얼 코키는 잡스의 냉정함으로 한 푼도 못 벌었다. 연봉제 직원이 아니라 시급제 직원이기에 기업공개 전에 주어지는 스톡옵션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코키는 창업멤버였기에 ‘발기인 주식’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잡스는 초창기를 함께했다는 이유로 지분을 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번 만나자는 코키의 부탁을 매번 거절했다.
잡스는 다혈질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대학 시절,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얼마를 주면 애인이 아닌 남자와 섹스를 할 수 있느냐’고 대놓고 물었다. 첫 직장인 아타리에서는 샤워를 안 해 몸에서 나는 더러운 냄새와 ‘모두가 형편없다’는 그의 독선으로 동료와 어울리지 못해 야간근무를 했다. 맨발로 사무실을 다니고, 자신의 생일파티에 참석자들에게 ‘검은 타이에 테니스 운동화’ 차림을 요구했다. 펩시에서 영입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는 ‘잡스의 천박한 행동방식’을 힘들어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는 잡스가 ‘기본적으로 이상하고 인간으로서 결함이 있다’고 여겼다.
잡스의 이런 태도와 성격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앤디 허츠펠트를 비롯한 오랜 친구들은 ‘출생 직후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모종의 상처를 남겼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여기에 특별하다는 인식과 반항심, 완벽주의 성향이 겹쳐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잡스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빠진 적은 없었다’고 일축하며 ‘친부모는 정자은행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무례한 언사에 대해선 ‘무언가 형편없을 때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회사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잡스가 20대 후반 사귄 여자친구 제니퍼 이건은 죽음에 대한 예감과 연관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건은 ‘잡스는 당시 내게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털어놓았고, 자기가 그토록 열정적이고 참을성이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회상했다.
고교 때 통신신호 복제 공짜 전화 … 무대 연출 귀재
2010년 1월, 아이패드를 발표하는 잡스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역사상 이렇게 대단한 흥분과 환호를 불러일으킨 태블릿은 두 개다. 하나는 모세가 들고 나온 십계명이 적힌 석판이고, 다른 하나는 잡스가 들고 나오는 아이패드’라고 전했다.
아이패드뿐 아니었다.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혁명적 PC 애플을 내놓았고, 디지털 창작의 기적을 열었다는 ‘토이 스토리’를 비롯한 픽사의 블록버스터를 선보였다. 음악 소비 방식을 바꾼 아이팟, 휴대전화를 음악·동영상·인터넷기기로 전환시킨 아이폰을 만들어 냈다.
괴팍하고 악마적 성향을 지닌 잡스였지만 그는 천재였다. 직감적으로 세상과 시장의 흐름을 읽었고, 묘한 매력으로 상대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으며 대중을 사로잡는데 특출한 능력을 발휘했다. ‘인문학적 감각과 과학적 재능이 강력한 인성 안에서 결합할 때 발현되는 창의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빌 게이츠조차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그냥 다르다. 내가 보기에 마법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특질은 아버지의 영향 아래 키워진 공학적 지식과 장인정신, 자신은 특별하다는 인식, 선(禪) 수행, 음악과 영화, 인문학에 대한 사랑,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결합해 나타난 것이다.
잡스는 고등학교 시절, AT&T 통신의 신호를 복제하는 방법으로 장거리 전화를 공짜로 했고, 집안을 도청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부모의 침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엿듣다 들켜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했다. 전자신호의 펄스를 초 단위로 측정하는 주파수 계수기를 만들었으며 부품을 구하기 위해 hp의 최고경영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시대 흐름을 읽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난 잡스는 80년대 후반 ‘컴퓨터가 향후 100배 이상 더 강력해질 것’을 알았고 ‘머지않아 창의적인 사람들이 컴퓨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것’을 예상했으며 이를 픽사의 성공으로 보여 줬다. 그가 이끈 픽사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시스템(CAPS)을 개발했고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애플에서 쫓겨나 넥스트를 운영하던 시절엔 컴퓨터에 셰익스피어 작품집과 사전을 넣은 ‘최초의 전자책’을 선보였다. 세 개의 버튼에 조작하기 복잡한 단가 300달러짜리 마우스를 단지 15달러를 들여 부드럽고 편리하게 바꾸는 데 성공했다. 판매에 실패한 컴퓨터 ‘파워 맥 G4 큐브’처럼 잡스가 늘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항상 새로운 감각과 디자인을 강조하며 혁신을 이끌었다.
또 제품 소개행사에선 ‘앤드루 로이드 웨버’로 불린 무대 연출의 귀재였으며 천재적 광고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83년 애플 이사진의 강한 반대 속에서도 그는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매킨토시 광고를 만들도록 했고, 그것은 그해 최고의 광고로 뽑혔다.
무엇보다 뛰어난 능력은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게 만들고, 이를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75년 아타리의 사장 놀런 부시넬은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벽돌 깨기 게임을 50개 미만의 칩을 써서 만들라고 잡스에게 지시했다. 잡스는 워즈니악을 끌어들였고 그들은 2~3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그 게임을 사흘 만에 만들어 냈다. 워즈니악은 ‘처음엔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스는 내게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줬다’고 말했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를 만들 때도 그는 이런 능력을 발휘했다.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예술적 완벽주의를 감춰 두고 있던 픽사의 존 래시터, 수익만을 강조하는 회사에 실망해 퇴사하려는 디자인의 귀재 조너선 아이브를 발탁해 옆에 뒀다.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고 외친 인물이었으며 혼을 빼놓을 만큼 뛰어난(insanely great) 제품을 만들라고 요구하며 그것을 이끈 리더였다. 책을 쓰기 위해 수년에 걸쳐 잡스 본인과 주변 인물을 인터뷰한 작가 윌터 아이작슨은 ‘불쑥불쑥 통찰력이 쏟아져 나오는 마법사 천재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올가을 최고 베스트셀러에 올라선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전기작가의 힘을 빌려 남긴 삶의 기록이다. 그 삶의 기록에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려 온 잡스의 두 모습이 담겨 있다. ‘주위 사람들을 분노와 절망으로 몰아갔던’ 악마 같은 잡스와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을 좋아했던’ 천재 잡스다. 잡스는 자신의 두 모습을 잘 알고 있었다. 주변 사람을 때때로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나도 괴로웠다’고 하면서 동시에 ‘난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4일 국내에 출간된 이 책은 인터넷서점에서 기존 하루 최고 판매량인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을 뛰어넘으며 29일 현재 15만 부(출판사 기준)가 팔렸다. 중앙SUNDAY는 책에서 잡스의 천재성과 악마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을 추려 소개한다.
“그녀가 나하고만 잤겠나” … 자기 딸 낳은 여친 버려
잡스는 딸을 낳은 여자친구에게 매춘부 이미지를 씌운 남자였다. 91년 로런 파월과 결혼 당시 그는 이미 ‘리사(Lisa)’라는 딸을 둔 아버지였다. 여자친구 크리스앤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낳았다. 23세 때로, 친부 압둘라파 잔달리가 그를 버렸을 때와 같은 나이였다. 그들은 가끔 잠자리를 함께했고 브레넌은 임신했다. 잡스는 자신이 아기 아버지라는 것을 부인했다. ‘내가 유일하게 잠자리를 함께한 남자가 아닐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애플 창업자로 이름을 날리던 시절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통계적으로 미국 남성의 28%가 리사의 아버지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리사가 자신의 딸인 것이 분명했지만 잡스는 브레넌에게 무심하고 냉담했다. 브레넌은 ‘스티브는 나를 매춘부로 몰아갔다.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까’라고 분노했다.
잡스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을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했다. 애플 시절,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커서가 움직이는 마우스를 개발하라고 지시하자 담당 엔지니어가 ‘도저히 만들 수 없다’고 답했다. 잡스는 그를 다음 날 바로 해고했다. 픽사 시절 ‘해고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보여 줄 감정적 능력도, 재정적 여유도 없었던’ 잡스는 해고를 즉시 통보했고, 퇴직수당도 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직원들의 면전에서 ‘쓰레기’라고 혹평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남의 아이디어를 제 것인 양 가로채기도 했다. 같이 일하기 싫은 끔찍한 관리자였다. 애플의 기술문서 담당이었던 제프 래스킨은 81년 당시 사장인 마이크 스콧에게 ‘스티브 잡스와 함께, 또는 그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이란 글을 보냈다.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잡스는 생각 없이 행동한다. 누군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곧바로 바보 같은 생각이라 헐뜯기 일쑤다. 만일 어떤 직원이 근사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게 자기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말하고 다닌다. 남의 말을 가로막고 끼어들기 일쑤며, 상대방 말은 듣지도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애플 직원들은 그런 잡스에게 당당하게 맞선 사람을 뽑아 서로 상을 주기도 했다.
그는 의리 없는 인간이었다. 80년 애플을 공개하면서 잡스를 포함해 300여 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했다. 하지만 오랜 친구이자 창업멤버인 대니얼 코키는 잡스의 냉정함으로 한 푼도 못 벌었다. 연봉제 직원이 아니라 시급제 직원이기에 기업공개 전에 주어지는 스톡옵션을 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코키는 창업멤버였기에 ‘발기인 주식’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잡스는 초창기를 함께했다는 이유로 지분을 줄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한 번 만나자는 코키의 부탁을 매번 거절했다.
잡스는 다혈질에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대학 시절, 친구의 여자친구에게 ‘얼마를 주면 애인이 아닌 남자와 섹스를 할 수 있느냐’고 대놓고 물었다. 첫 직장인 아타리에서는 샤워를 안 해 몸에서 나는 더러운 냄새와 ‘모두가 형편없다’는 그의 독선으로 동료와 어울리지 못해 야간근무를 했다. 맨발로 사무실을 다니고, 자신의 생일파티에 참석자들에게 ‘검은 타이에 테니스 운동화’ 차림을 요구했다. 펩시에서 영입된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존 스컬리는 ‘잡스의 천박한 행동방식’을 힘들어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는 잡스가 ‘기본적으로 이상하고 인간으로서 결함이 있다’고 여겼다.
잡스의 이런 태도와 성격에 대한 해석은 엇갈린다. 앤디 허츠펠트를 비롯한 오랜 친구들은 ‘출생 직후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모종의 상처를 남겼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여기에 특별하다는 인식과 반항심, 완벽주의 성향이 겹쳐졌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잡스는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빠진 적은 없었다’고 일축하며 ‘친부모는 정자은행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무례한 언사에 대해선 ‘무언가 형편없을 때 그렇게 얘기하는 것뿐이다. 그래야 회사가 발전한다’고 말했다. 잡스가 20대 후반 사귄 여자친구 제니퍼 이건은 죽음에 대한 예감과 연관한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건은 ‘잡스는 당시 내게 오래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털어놓았고, 자기가 그토록 열정적이고 참을성이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털어놓았다’고 회상했다.
고교 때 통신신호 복제 공짜 전화 … 무대 연출 귀재
2010년 1월, 아이패드를 발표하는 잡스에 대해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역사상 이렇게 대단한 흥분과 환호를 불러일으킨 태블릿은 두 개다. 하나는 모세가 들고 나온 십계명이 적힌 석판이고, 다른 하나는 잡스가 들고 나오는 아이패드’라고 전했다.
아이패드뿐 아니었다.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혁명적 PC 애플을 내놓았고, 디지털 창작의 기적을 열었다는 ‘토이 스토리’를 비롯한 픽사의 블록버스터를 선보였다. 음악 소비 방식을 바꾼 아이팟, 휴대전화를 음악·동영상·인터넷기기로 전환시킨 아이폰을 만들어 냈다.
괴팍하고 악마적 성향을 지닌 잡스였지만 그는 천재였다. 직감적으로 세상과 시장의 흐름을 읽었고, 묘한 매력으로 상대를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으며 대중을 사로잡는데 특출한 능력을 발휘했다. ‘인문학적 감각과 과학적 재능이 강력한 인성 안에서 결합할 때 발현되는 창의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빌 게이츠조차 ‘그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그냥 다르다. 내가 보기에 마법 같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특질은 아버지의 영향 아래 키워진 공학적 지식과 장인정신, 자신은 특별하다는 인식, 선(禪) 수행, 음악과 영화, 인문학에 대한 사랑,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열정이 결합해 나타난 것이다.
24일 출간된 『스티브 잡스』 전기
시대 흐름을 읽는 데 동물적 감각을 지난 잡스는 80년대 후반 ‘컴퓨터가 향후 100배 이상 더 강력해질 것’을 알았고 ‘머지않아 창의적인 사람들이 컴퓨터를 다양하게 활용할 것’을 예상했으며 이를 픽사의 성공으로 보여 줬다. 그가 이끈 픽사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시스템(CAPS)을 개발했고 이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애플에서 쫓겨나 넥스트를 운영하던 시절엔 컴퓨터에 셰익스피어 작품집과 사전을 넣은 ‘최초의 전자책’을 선보였다. 세 개의 버튼에 조작하기 복잡한 단가 300달러짜리 마우스를 단지 15달러를 들여 부드럽고 편리하게 바꾸는 데 성공했다. 판매에 실패한 컴퓨터 ‘파워 맥 G4 큐브’처럼 잡스가 늘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항상 새로운 감각과 디자인을 강조하며 혁신을 이끌었다.
또 제품 소개행사에선 ‘앤드루 로이드 웨버’로 불린 무대 연출의 귀재였으며 천재적 광고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83년 애플 이사진의 강한 반대 속에서도 그는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매킨토시 광고를 만들도록 했고, 그것은 그해 최고의 광고로 뽑혔다.
무엇보다 뛰어난 능력은 주변 사람으로 하여금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믿게 만들고, 이를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이었다. 75년 아타리의 사장 놀런 부시넬은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벽돌 깨기 게임을 50개 미만의 칩을 써서 만들라고 잡스에게 지시했다. 잡스는 워즈니악을 끌어들였고 그들은 2~3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그 게임을 사흘 만에 만들어 냈다. 워즈니악은 ‘처음엔 도저히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잡스는 내게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줬다’고 말했다.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를 만들 때도 그는 이런 능력을 발휘했다. ‘큰 그림을 보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예술적 완벽주의를 감춰 두고 있던 픽사의 존 래시터, 수익만을 강조하는 회사에 실망해 퇴사하려는 디자인의 귀재 조너선 아이브를 발탁해 옆에 뒀다. 다른 것을 생각하라(Think Different)고 외친 인물이었으며 혼을 빼놓을 만큼 뛰어난(insanely great) 제품을 만들라고 요구하며 그것을 이끈 리더였다. 책을 쓰기 위해 수년에 걸쳐 잡스 본인과 주변 인물을 인터뷰한 작가 윌터 아이작슨은 ‘불쑥불쑥 통찰력이 쏟아져 나오는 마법사 천재의 전형’이라고 평가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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