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범석]산사태보다 더 무서운 서초구의 ‘거짓말’
김범석 사회부
“왜 피하는 겁니까. 우리가 두렵습니까?”
지난달 29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청 1층에 고성이 터졌다.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 유가족 10여 명이 원인 규명과 보상 문제를 논의하자며 진익철 서초구청장을 찾아온 것이었다. 이들은 오후 5시에 진 구청장과 면담 약속이 돼 있었다. 오후 6시가 되자 구청 관계자가 유족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진 구청장이었다. “왜 오지 않느냐”는 유족의 질문에 그는 “현장에서 복구 작업 중이니 부구청장과 상의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진 구청장은 이날 유족들이 돌아간 뒤 오후 10시 반이 돼서야 구청으로 복귀했다. 서초구청은 이날 오후 3시부터 구청장실이 있는 5층에 엘리베이터가 서지 않도록 조작을 해뒀다. 구청의 한 간부는 “유족들이 구청장실에서 격한 행동을 할까봐 걱정이 돼 그랬다”고 털어놨다. 유족들은 “구청장은 우리를 만날 생각이 없다. 속았다”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1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유족들의 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초구청의 계속되는 거짓말 때문이다. 서초구청은 면담 약속을 깬 뒤부터 ‘거짓말 시리즈’를 내놓았다.
서초구는 산림청 시스템에 등록하는 직원들의 연락처를 업데이트하지 않아 26일 오후 5시 24분 처음 전송된 산사태 경고 문자메시지(SMS)를 엉뚱한 직원이 받도록 방치했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도 “문자 자체를 받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진 구청장은 29일 오전 문자 수신 사실을 보고받았다. 그 시간에 서초구는 “메시지를 못 받았다”는 보도자료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30일 오전 슬그머니 산림청 시스템에 직원 5명의 연락처를 새로 등록했다. 물론 이 사실도 감췄다.
거짓말이 드러나자 서초구청 관계자는 “처음에 잘못 해명했다가 문제가 커져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계획적인 거짓말이 아니라 일종의 ‘애드리브(즉흥 대응)’였다는 것이다.
진 구청장은 2일 오전 기자의 전화를 받자마자 “복구 현장에 나와 있다”며 전화를 끊었다. 유족들에게 했던 것처럼 진실을 규명하려는 언론도 피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진 구청장에게 필요한 것은 복구현장을 찾는 것보다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 거짓말은 산사태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김범석 사회부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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