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은 제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학교 다닐 때도 가깝게 지냈고, 서울에 있을 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자주 만나는 편이었습니다. 그와 나는 가지고 있는 생각과 지향하는 삶의 방향은 판이합니다. 그런데도 서로 만나 허물없이 어울린 것은 그가 갖고 있는 순수한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50 중반의 나이임에도 아직 때 묻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와 가까이 지내는 사이지만 그가 여행 업계에서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 교회 청년 정태중은 금년에 홍대 미대를 들어갔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대로 방향을 트는 바람에 부모님들과 적잖이 마찰이 있었다고 합니다. 재수를 한 끝에 그가 바라던 홍대 미대에 갔으니 1차적 꿈을 이루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방랑벽입니다. 대입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라도 바람을 타면 혼자 멀리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청년입니다. 그는 여행가 이지상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나이에 그렇듯이 태중이도 어느 정도 환상을 갖고 이지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가 목사님 친구라고 하니까 저를 다른 눈으로 보더군요. 목사님을 통해서 여행가 이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여행가 이지상의 앵글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지상은 여행 작가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습니다. 그가 쓴 여행 관련 도서를 몇 권 읽어보았습니다만 여행을 위한 안내 책으로만 보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여행기 속에는 그의 생활 철학이 담겨 있었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공동체 정신을 망각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삶은 더 안 된다. 나의 입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아라, 그러면 이해의 마음 양보의 마음 나아가 이런 것들이 모여 사랑의 마음이 된다, 대충 이런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이지상을 처음엔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현실을 망각하고 이상만 좇는 그의 삶이 친구로서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나와서 직장 잡아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며 아이들과 함께 알콩달콩 사는 일반적 모습에서 그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늘 우려로 나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도 잘 했습니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해서 그쪽으로 나가려니 생각했습니다. 그의 바른 마음이 그리고 곧은 정신이 혼탁한 정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아무리 못해도 국회의원 보좌관쯤은 느끈히 차고앉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더군요. 당시 재벌 순위 몇 번째 손꼽히던 대우에 입사했습니다. 1,2년 다녔을까요? 그는 직장을 그만 두고 무전여행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휴직이냐고 물으니 완전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재벌 회사 들어 가가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혼자 몇 개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외국 여행에 가장 크게 부담되는 것이 항공료라며 대한항공에 들어가서 직원으로서의 혜택을 받으면 여행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항항공 입사 시험 준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군대를 갔다 왔고 첫 직장에다 외국 무전여행으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녀석이 젊은이들과 입사 시험을 치러 경쟁에 이길 수 없을 것으로 지레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뒤, 그가 대한항공 시험에 합격해서 연수를 받는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신통하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쉬다 가다를 반복하며 항공회사에 적을 두고 살았습니다. 물론 쉬는 기간은 휴직계를 내고 외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의 삶이 나의 삶과는 너무 대조적이라 왈가왈부하기가 뭣했습니다만 한 가지 나는 그가 여행을 하더라도 선남선녀들에 대한 계급의식을 좀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이런 바람이 이심전심으로 통했는지 모르지만 그 후 이지상의 여행은 제 삼국의 못 사는 세계에 치우치는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여행기로 곧 책으로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한 군데 몰입하면 그 방면의 대가가 되는가 봅니다. 이지상은 제가 아는 것 이상으로 그 쪽에서는 인정을 받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느 인터넷 기사를 보니까 우리나라 여행기의 문을 연 사람을 김찬삼으로 들고 있던데, 김찬삼이 외국의 풍물을 소개하는 데 그쳤다면 이지상은 그것에 정신을 녹여 풀어 소개했다는 내용도 보이더군요. 또 월드비전에서 봉사하는 사람으로 요즘 젊은이 특히 여성들이 호감을 많이 가지고 있는 한비야도 여러 권의 여행 도서를 냈는데, 직접 체험하지 않은 것을 직접 체험한 것처럼 기술한 내용이 많다고 해서 비판의 글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지상은 찬사 일변도였습니다.
글에는 진실이 담겨 있어야 읽는 이들이 공감을 하게 됩니다. 이지상은 이 점에서 점수를 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진실에는 정직한 생각과 맑은 정신에다 직접 현장을 확인한 내용이어야 하며, 거기에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이지상으로부터 그가 쓴 여행도서를 선물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동아일보사에서 나온 <중국 여행>과 <실크로드>라는 책이 그것입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입니다. 사인을 해서 달라는 저의 부탁에 그는 간단하게 날짜를 적고 '지은이 이지상'이라고만 울퉁울퉁한 글씨(그의 글씨는 악필에 가까움)로 적어 주었습니다.
재작년 미얀마와 베트남 선교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외국행이 처음이라 이지상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 있을까 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는 별 도움 줄 것이 없다며 베트남에 대한 그의 책을 한 권 권해주었습니다. <호치민과 시클로>로 기억됩니다. 그의 베트남 여행기인데, 초행인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호치민과 시클로'는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징어입니다. 독립영웅 호치민은 베트남 민족을 대표하고 있는 인물이며 수동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한 자동도 아닌 시클로는 베트남의 경제를 웅변해주고 있는 교통수단입니다. 이 두 상징어는 어디를 가나 사람의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은 일상을 떠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이 여행이어도 좋고 아니면 도피라고 해도 싫어할 일이 아닙니다. 반복되는 현실에 부대낄 때, 가끔 아는 이 없는 곳에 가서 자유를 누리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행가 이지상의 삶을 떠올립니다. 늦장가를 가서 가정을 가졌지만 아이는 두었는지, 여행 모임에서 만난 연령 차 많이 나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여행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직업이 된 것에 질리는 점은 없는지, 타성에 빠진 삶을 지극히 싫어하는 그가 중년 이후의 삶은 매너리즘 이외의 것으로 설명하기 힘든데 어떻게 임하고 있는지 참으로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여행 작가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가로 인정받고 있는 친구 이지상이 '여행'이라는 개념을 올바로 정립해 주기를 바랍니다. 돈과 시간이 남아돌아 즐기기만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곳에 땀과 눈물이 서려 있고, 약자를 위하는 마음이 녹아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간미 넘치는 사랑이 풍성한 여행의 개념, 그런 여행이라면 멀지 않아 나도 한 번 시도해 보고싶어질 것입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더 성숙한 인간관계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의 성숙에 기여하는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여행을 그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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