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주 안에서의 사귐에 연령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 때에도 나이를 따지고 윤리도덕을 중요시한다면 그 사귐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서로 존중하며 위해주고 모든 초점을 하나님께 맞추면 사랑의 교제가 힘 있게 계속해서 진척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환경이 좀 외롭게 여겨지는 이곳에서 이런 분들로 인해서 큰 위로를 받고 있다. 목회를 하지 않았다면 만남이 이루어질 수 없는 분들이다. 아니 목회를 했다고 해도 하나님이 맺어 주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짙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을 것이다.
이분들이 고마운 것은 내가 목회하면서 힘에 겨울 때, 찾아와서 힘을 북돋아 준다는 것이다. 화가 날 때 화를 가라앉혀 주고, 기운 없어 할 때 상쾌한 바람을 쐬게 해 줌으로서 기운을 차리게 하고, 우울할 때 전통찻집‘자명(紫明)’에 가서 진한 대추차를 마시며 예술을 논함으로 우울한 기분을 가시게 만들어 준다. 나는 이분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분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만큼 필요할 때 꼭 곁에서 나의 마음을 읽어주고 필요를 적절하게 채워주고 있다.
어제(6월 5일)도 그런 날 중의 하루였다. 주님의 일이라는 것이 시간적 여유를 자주 갖도록 허락하지 않는 특징이 있는데, 김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시간 있으면 수도산 숯가마에 다녀오자는 것이다. 박 국장님도 특별히 하루 휴가를 내서 함께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바깥 봄 공기를 쐬며 자연의 향기를 맛보고 싶은 생각을 내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좋다며 김 권사님 집으로 차를 몰았다. 그 사이 권사님은 나들이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냉커피도 한 통 준비하고 그것도 모자랄 것 같아 따뜻한 녹차를 보온병에 가득 준비했다. 가면서 ‘김천문화신문’에 들려 박 국장님과 함께 시내를 빠져 나갔다. 박 국장님은 출근하면서 숯가마 행을 작정하고 캐주얼 차림으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도산 숯가마에서 땀을 많이 빼야 한다며 내복에다 두툼한 쉐터까지 끼어 입었다. 그 위에다 또 잠바를 걸쳤다. 북풍 한파라도 막아낼 차림이었다. 우리는 이럴 때면 나이를 잊고 동심으로 쉬 돌아간다.
박 국장님이 저음의 베이스 목소리로 가곡을 부르면 김 권사님이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건전 가요로 화답한다. 나도 유일하게 가사를 외우고 있는 '떠나가는 배'를 부르지만 마치 프로들 앞에 아무추어가 끼는 것 같아 어색함이 역력하다. 춤추고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에 도취되어, 또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풀며 기지개를 켜고 목을 내미는 새싹들을 음미하며 산길을 달리는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었다. 이런 기분은 돈이 많다고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확보했다고 아니면 공부를 많이 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실하고 사랑 넘치는 사람들이 만나서 마음이 부딪힐 때 나올 수 있는 기분이다.
낮 12시가 채 못 되어 숯가마에 도착했다. 우린 땀복으로 갈아입고 숯가마에 들어갔다. 어제는 두 곳의 가마가 열려 있었다. 따스한 곳과 뜨거운 곳. 우린 처음부터 뜨거운 곳을 택해 입실했다. 모르긴 해도 섭씨 60도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은 가마이다. 살갗이 노출되면 델 정도로 공기가 뜨겁다. 10분을 넘기는 사람이 없다. 한 5분쯤 지나면 구슬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엉덩이 밑에 수건을 두껍게 깔고 발판용으로 또 한 장의 수건을 깐 다음 얼굴까지 수건으로 둘러야만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차림이 된다. 그리고 옆의 따스한 가마에 번갈아 들어가면 땀으로 몸은 흥건히 젖게 된다.
1시가 넘으니 시장기가 왔다.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식당으로 옮겼다. 수도산 숯가마의 식사는 그것 나름대로 독특한 맛이 있다. 미역국에 밥 그리고 돼지고기 4인분을 시켰다. 참숯불에 굽힌 고기는 다른 데서 먹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이 있다. 자갈밭에서 직접 구워 먹는 재미도 맛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우리를 더욱 즐겁게 한다. 수도산 숯가마에 올 때마다 동일한 메뉴로 식사를 하는데, 우리는 분위기에 맞춰 맛있게 먹어서 좋고 관리인은 식사를 제공하는 데서 오는 이문이 있어서 좋고, 그야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어서 서로를 흐뭇하게 만든다.
우리는 가마를 번갈아 들락거리며 하루를 몽땅 그곳에 투자했다. 땀도 많이 흘렸고, 준비해간 커피 녹차도 열심히 마셔댔다. 마음 넉넉한 김 권사님은 초면인 사람들에게 시원한 냉커피를 대접함으로써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었다. 어디든 김 권사님과 같은 분위기 메이커가 필요하다. 그렇게 하고 나니 금세 우리는 한 이웃이 되었다. 숯가마 영업시간은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로 되어 있다. 우리는 정확하게 4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고 숯가마를 내려왔다. 돌아오면서 꼭 들릴 것이 있다고 박 국장님이 말했다. 박 국장님의 말에는 언제나 무게가 느껴져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혹부리영감 식당이라고 했다. 묵과 전통 두부 그리고 보리밥이 일품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박 국장님은 식도락가이다. 김천 인근뿐만 아니라 구미 상주 등 웬만한 지역의 맛있는 음식점은 거의 꿰뚫고 있다. 성주 댐을 지나 한참을 가니 한 마을이 나왔다. 혹부리영감 식당이라고 했지만 간판에는 '원조 할매 묵집'으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정식 명칭이 아니었다. 아마 별칭인 것 같았다. 나중 혹부리영감의 손자 되는 사람에게 받은 명함에는 '원조 할매묵집'에 괄호하고 '장수식당'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정식 식당 이름은 '장수식당'인 셈이다.
식당 벽에 KBS와 MBC에 방영되었다며 '맛자랑 멋자랑' 관련 화면 사진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TV를 탄 음식점은 전국적으로 소문이 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화요일 오후 한가한 시간임에도 주차장에 차들이 있었고 손님들도 적지 않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혹부리영감 식당이 유명세를 타자 옆에 비슷한 메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들어섰지만 그곳엔 사람들이 가지 않고 혹부리영감 식당으로만 몰려온다고 한다. 옛날 가옥에 두부와 묵 만드는 틀이 놓여 있고, 혹부리영감 부인되는 할머니가 손으로 직접 묵과 두부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같이 간 아내는 이런 음식점을 오래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는데, 오늘 그 현장을 발견했다며 좋아했다.
우리는 묵과 손두부 그리고 보리밥을 시켜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우리에겐 그것들이 건강식품이자 특식이었다. 멀리서 일부러 올 만한 음식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회지에서 손님이 올 경우 이곳으로 모실 것을 생각하고 명함을 하나 받아두었다. 이 식당의 정식 명칭이 장수식당이라고 했는데, 자꾸 혹부리영감 식당이라고 해서 미안하다. 실제로 혹부리영감 식당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식당 근처에서 장작을 패고 있는 혹부리영감을 만났다. 자세히 보니 목 옆과 뒤 부위에 큰 혹이 정말 붙어 있었다. 연치가 있음에도 후덕한 인상이 그의 별칭과 잘 어울렸다.
돌아오는 길에 성주군 벽진면을 들렸다. 이곳은 신라 말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悤言)을 기리는 큰 비석이 있고, 그의 집이 있던 터를 잘 정비하여 여러 채의 구옥이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시간이 늦어 안을 볼 수 없어서 아쉬웠다. 이총언은 백진 이씨의 시조라고 한다. 조선조 때의 문신 이항로가 그의 후손이고, 국문학자 이가원 박사도 벽진 이씨라고 했다. 이총언 기념비는 백사 이항로가 짓고 이가원이 쓴 것으로 되어 있었다. 벽진이씨는 고려 태조 왕건이 그의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정과 백성 사랑하는 마음을 기특하게 여겨 본과 성을 시사(施賜)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한 마을 전체가 양반의 기품이 서려 있는 모습은 오늘날 봐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성주 전체가 참외와 수박으로 유명하지만 특히 벽진은 농사를 지으면서 연 1억 이상의 순수입을 올리는 농가가 많아 부촌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까지 이어진 여로(旅路)였지만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선>에 나오는 샹그릴라를 경험하고 온 것과 같은 기분에 젖었다. 이런 시간은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하는 기회가 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어제 전체 경비를 부담하며 유익한 시간을 만들어 준 박 국장님과 김 권사님에게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린 헤어지면서 다음 여행의 목적지까지 정해 놓았다. 무주 인근에 '나제통문(羅濟通門)'이 있다고 하는데 그길 가보기로 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가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이었다고 한다. 직접 경험은 책을 통한 간접 경험에서 얻지 못하는 산 지식을 쌓게 만든다. 이끼 낀 현물(現物)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오랜 시간을 추적해 올라가는 맛은 고적을 답사하면서 얻을 수 있는 수확이 된다. 이래저래 풍성한 역사안(歷史眼)을 가진 박 국장님 같은 분 옆에 있으면 그의 지식으로 인해 나까지 덩달아 풍요로운 지적 향취에 젖게 된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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