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일과

사람의 빈자리

 


    사람의 빈자리 얼마 전, 친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저희 집에 오시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도 반갑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방을 함께 쓰는 것은 물론이며 할머니의 식사와 약을 꼼꼼히 챙겨드리는 것과 병원에 모셔다 드리는 것 까지 모두다 제 몫입니다. 어머니께서 일을 하고 계셔서 할머니 저녁식사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친구들과 저녁약속은 엄두도 못 냅니다. 바닥에 날리는 하얀 흰머리를 줍는 거며, 보청기를 하셨는데도 온 집안 식구들은 큰소리를 질러야만 합니다. 어쩔 땐 속상한 나머지 할머니를 몰아붙입니다. 그러는 저의 모습에 움찔 놀라 주변을 살피기도 여러 차례.하지만 할머니는 마냥 웃으시며 아무 말씀도 안하십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 방에 이불은 가지런히 잘 정돈되어 있었고, 빨래며 설거지까지 말끔히 해놓으셨습니다. 원래는 나중에 천천히 가시려고 했는데 작은아버지가 예정보다 일찍 오셔서 오전에 모셔갔다고 합니다. 왠지 모르는 섭섭함... 제 방도 제 마음도 멍하니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식탁에 나란히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것도 좋았고, 심심찮게 말동무하며 TV를 보던 것도 좋았는데... 그러다 책상위에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5장을 보았습니다.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내립니다.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에게는 힘든 돈이실텐데, 밉상인 손녀가 뭐가 예쁘다고...흐흑.’ 그동안 제가 못해드린 건 다 잊어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은 잠시 가셨지만, 조만간 저희 집에 다시 오십니다. ‘할머니 빨리 오세요. 다시는 후회하지 않도록, 저 잘 할 자신 있어요. 할머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