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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뉴스

[총선] "여론조사로 후보 뽑자" 편의주의가 빚은 참사

 

당내 경선·단일화 관련규정도 전혀 없어 한국일보 | 송용창기자 | 입력 2012.03.22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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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자체에 왜곡의 여지가 많은데, 터질 일이 터졌다.""정치권의 여론조사 만능주의로 인해 빚어진 참사다."

최근 야권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불거진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지켜본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정치권이 후보자 공천이나 단일화 과정에서 여론조사 방식에 주로 의존하고 있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오히려 "여론조사의 근본적 결함을 무시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4ㆍ11 총선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는 '객관적 근거'라는 이름으로 전방위로 활용됐다. 새누리당은 여론조사 등을 근거로 현역 의원 25%를 탈락시키는가 하면 일부 지역 경선에서 여론조사 방식을 활용했다. 민주통합당도 공천자나 경선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뿐 아니라 지역구 경선에서도 여론조사를 일부 병행했다. 특히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76곳에서 실시한 야권후보 단일화 경선도 여론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문제는 여론조사 절차와 진행 방법에 빈틈이 많아서 자칫 특정 정치세력에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점이다. 야권은 이번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전화면접원의 임의번호걸기(RDD)와 전화자동응답(ARS) 방식을 50대 50으로 병행했는데, ARS 방식 자체가 여론을 왜곡할 여지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ARS 방식은 응답자가 나이를 속이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다 기계음이다 보니 응답률도 현저히 떨어져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ARS 응답률은 보통 3~5% 수준"이라며 "정치적 관심이 높은 사람만 응답하다 보니, 조직적으로 대응하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의 경우 전화면접원 조사에서는 49%를 얻었지만, ARS에선 57%로 김희철 의원(42%)을 크게 앞섰다.

일부 여론조사기관이 조사 진행 상황을 특정 후보 측에 유출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총선,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군소 여론조사기관들이 수백 개씩 난립하다 보니 이들 기관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조사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여론조사의 표본집단을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의혹도 있다. 최근 새누리당의 지역구 여론조사 경선에서 떨어진 한 후보는 "우리가 집중적으로 운동한 지역에선 한명도 전화를 못 받았고, 상대 후보의 고향 동네에 전화가 집중됐다고 들었다"며 "경선 결과에 승복했지만 여론조사가 조작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규도 충분하지 않다. 공직선거법이 언론의 후보 지지율 보도에 대해서는 규정을 두고 있으나 당내 경선 및 단일화 경선 과정의 여론조사 절차 등에 대한 규정은 전혀 없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소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여론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쓰는 여론조사를 후보자 선정에까지 활용하는 것은 무리"라며 "여론조사에 대한 의존은 정치적 무능력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