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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뉴스

통큰치킨 판매중단, 우리는 떳떳한가

통큰치킨 판매중단, 우리는 떳떳한가
[주장] 동네치킨집·소비자는 울고 대기업·정부 웃다
10.12.15 09:03 ㅣ최종 업데이트 10.12.15 12:36 안호덕 (minju815)

  
'5천 원 치킨' 판매가 시작된 지난 9일 오전 11시 롯데마트 영등포점에 예약 번호표를 받아든 고객 50여 명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 김시연
치킨

 

5000원에 팔린다는 롯데마트 '통큰치킨' 논란이 연일 뜨겁다.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소비자의 권리와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 논쟁에 롯데마트 통큰치킨까지 등장하면서 이 문제가 방송 토론 주제가 되고, 정치권 공방까지 한층 치열해진 모습이다.

 

누리꾼들은 '얼리어닭터' '닭세권' '계천절'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 내며 논란에 가세했고, 쏟아지는 패러디물들은 논란에 별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도 눈길을 돌리게끔 만들었다. 그리고 13일, 롯데마트 측에서 16일 이후 통큰치킨 판매를 중단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그러나 논란 끝에 나온 판매 중단 선언이 상생과 공정사회의 여론에 굴복했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세업자들의 반발과 누리꾼들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던 롯데마트가 느닷없이 판매 중단을 선언한 이유가 미심쩍기 때문이다.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트위터에 글을 남겨 우려를 표명하고, 프랜차이즈협회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를 하겠다고 나서는 등 논란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더 설득력이 있다.

 

닭도 청와대 허락을 받고 팔아야 하는 세상

 

"닭도 청와대에 허락받고 파냐"는 조롱 섞인 비난은 통큰치킨 판매 중단 선언이 권력의 입김과 프랜차이즈 기업들간 파워게임의 결과일 뿐이라는 여론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5000원 통큰치킨은 16일 사라지겠지만 대형자본의 탐욕은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고, 또 다른 대형자본 프랜차이즈 기업들은 승리자의 특권을 한껏 누릴 수 있다. 

 

정작 피해자는 프랜차이즈에 많은 돈을 내고 이름을 빌려 쓰는 자영업자, 그리고 그 이름도 빌리지 못하고 시장 한 모퉁이에서 치킨을 파는 영세업자들이 아닐까? 또 2만 원에 육박하는 치킨 값이 너무 비싼 게 아니냐면서 진지하게 논의를 이어갔던 네티즌들도 피해자이기는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이 논란은 여기서 그치고 말 것인가? 소비자 권리와 영세자영업자의 생존권 문제는 하루아침에 생겨난 논란이 아니다. 그런데 아직 이렇다 할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내지 못했는데, '그렇게 반대하면 안 팔면 될 것 아니냐'는 식으로 판매 중단을 선언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하기에는 그동안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회적 에너지 소비가 너무 많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말뿐인 이명박 정권의 상생과 공정사회가 아닌, 서민들이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상생의 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또 이번 기회에 대형 자본의 사회적 책임이나 '착한 소비'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의미 있게 들린다.

 

신자유주의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각종 문제들이 불거졌다. 기름 값을 낮춘다는 이유로 대형마트에 주유소 허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골목 상권 초토화, '소비는 이념이 아니다'라고 강변했던 이마트 피자 논란, 이런 와중에도 재래시장을 돌면서 상인들에게 인터넷 공동 구매로 활로를 찾아보라는 이 대통령의 '안목' 까지.

 

이런 논란이 나타나는 시기와 현상은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정글 같은 약육강식의 혼란을 공정 경쟁이라며 적극으로 방임해 온 정부, 그리고 소비자를 위한다는 허울을 내세워 유통시장 전체를 장악하려는 대자본의 음모가 만들어 낸 문제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달 16일 오전 서울 강북구 삼양시장 롯데마트 공사장앞에서 '롯데마트 입점저지를 위한 강북 중·소상인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롯데마트 입점저리" 구호가 적힌 붉은 머리띠를 한 상인들은 "<삼양시장 재정비사업>이라고 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대형마트였다"며 "기업형수퍼마켓(SSM)만 들어와도 타격이 큰데, 그것보다 몇배는 큰 롯데마트가 들어오면 재래시장은 다 죽는다"고 분노했다.
ⓒ 권우성
롯데마트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언제든 대자본은 더 거대해지고 불공정한 경쟁에 밀린 소자본·영세 자본들은 거리에 나앉는 일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다. 피자, 치킨을  파는 대형마트가 손님을 불러 모으기 위해 떡볶이와 어묵을 헐값으로 팔고 족발·보쌈을 5000원에 팔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때 가서 또다시 영세상인들이 '떡볶이·어묵 파는 상인 다 죽는다' '족발·보쌈 원가가 얼마인데 그렇게 파느냐'고 항변해 보더라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대형마트와 대형자본은 항시 돈과 소비자를 찾아 꿈틀대고, 거기에 희생되는 영세 자영업자들은 순서가 문제일 뿐 안전지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올해 1/4분기 자영업자 폐업자 수가 55만 명에 이른다는 보도는 오래 전 뉴스였다. 이후 또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폐업의 대열에 합류했는지는 통계로 나와 있지 않지만 길거리 곳곳에서 '임대 문의' '폐업 세일' 문구가 붙은 유리문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어떤 서민이 험한 세상을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도 자주 흘러나오고 있다.

 

대형마트는 피자와 치킨 출시 때 소비자 선택권을 주장했다. 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자 유통 본연의 임무라는 것이다. 피자나 통큰치킨을 반긴 소비자들의 논리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지 값싸고 질 좋은 제품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왜 제한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에서 오로지 '소비자'로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지출에 있어서는 소비자이지만 수입에 있어서는 노동자와 농민, 자영업자의 신분이 대부분이다. 수입이 없이 소비자로만 머물 수 있는 사람들은 소비자 권리만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지만 서민들은 그렇지 못하다. 소비자로서 권리와 더불어 수입을 안정적으로 창출하고,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을 수 있는 상생과 공정사회의 윤리가 없다면 서민의 살림살이는 날마다 벼랑끝일 수밖에 없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가 24일째 파업을 벌이고 있는 지난 8일, 정규직노조가 금속노조 총파업 참가여부를 묻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했다. 이런 가운데 파업중인 1공장 담장너머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앞에서는 이날도 정규직화를 위한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 등의 촛불집회가 열렸다
ⓒ 낮은표현
현대차비정규직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과 관련해서 정규직 노조가 파업에 동참할지 여부를 묻는 투표가 있었다. 그러나 개표 이전에 비정규직 노조와 사측이 협상 테이블에 앉음으로써 정규직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는 개표까지 가진 않았다. 하지만 개표까지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2년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사측은 정규직 전환을 거부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한 채 파업에 돌입했다. 그 과정에서 정작 실망스러웠던 것은 사측의 태도보다 정규직 노조의 우유부단한 모습이었다. 

 

어쭙잖게 중재 운운하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더니 여론에 떠밀려 파업 참여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했지만, 통과되리라는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전에 동료였거나 같은 사업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들이 내세운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요구도, 또 법원의 법적인 판단도 정규직 노조를 투쟁의 전선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런 정규직 노조에게 상생의 윤리나 공정사회의 윤리 규범은 어떤 의미일까? 정규직이 회사 감원 방침에 퇴직금 몇 푼 받아들고 치킨집·피자집 사장이 되고, 대형 자본에 밀려 또다시 폐업을 하고 비정규직이 되어 예전 일터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에서 서민들의 쳇바퀴 같은 삶을 그들은 과연 몰랐을까?

 

통큰치킨과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공통점 

 

롯데마트의 통큰치킨과 현대차의 비정규직 투쟁.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두 가지 사회 현상은 간과해서는 안 될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둘 모두 이명박 정부의 집권 이후 강화되고 점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대형자본이 공정경쟁과 노동 유연화라는 신자유주의 논리를 내세우며 공격적으로 나온다는 점. 그리고 피해자인 서민들이 소비자와 영세상인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의 등을 밀어댈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다는 점. 여기에는 대형자본이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는 본질이 깔려 있다.

 

자영업자의 숫자가 많다고 한다. 피자집·치킨집이 너무 많아 과열 경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자영업자, 피자집·치킨집이 많은 것은 보수 일각의 주장처럼 노동자들이 사장님 소리 듣고 싶어서 이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 아니다. 

 

IMF 금융위기의 희생양이 되어 퇴직금 몇 푼 받아 시작한 것이 피자집·치킨집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또 대형 자본의 먹잇감이 되어 삶의 근거지를 위협받고 있다.

 

  
기륭전자비정규직투쟁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
ⓒ 정택용
기륭전자 비정규직

인테리어비, 임대료, 재료비, 등 빚만 산더미처럼 남겨 놓은 채 폐업을 할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들. 이들이 갈 수 있는 길을 뻔하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 예전에 했던 일을 찾아서 비정규직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규직-명퇴-자영업자-파산-비정규직. 이런 악순환은 노동유연화와 최저 가격으로 소비자 권리 보호라는 허울을 쓴 채 거세게 한국사회에서 휘몰아치고 있다. 

 

정부와 대기업은 당신을 위해주지 않는다

 

비정규직 일자리에 사람이 넘쳐난다고 한다. 사람이 넘쳐나기에 사람의 값어치는 날이 갈수록 평가절하된다. 아내가 출산을 해도 출근해야만 하는 것이 비정규직의 현실이다. 비정규직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당신 아니더라도 사람 많아"라는 소리라고 한다. 정규직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제 명퇴 대상이 될지, 언제 내 자리가 비정규직으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고용 안정, 좋은 직장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파견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농민과 청년 실업자들. 이들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서민이고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이다. 등지고 서 있다고 서로를 부정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나가 넘어지면 주르르 넘어질 수밖에 없는 도미노 게임처럼 자영업자의 대규모 파산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정규직 일자리도 크게 위협한다.  

 

통큰치킨 출시는 단지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을 돕기 위한 대형 자본의 눈물어린 고객 사랑이 아니다. 또 통큰치킨 판매 중단 선언은 상생과 공정한 사회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자성에서 나온 서민 사랑이 아니다. 대형 자본은 여전히 노동자에게는 적은 임금을 주고, 자영업자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빼앗더라도 자기 배를 채우고 싶은 걸식증을 앓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날로 거대해 지는 공룡과도 같은 대형자본이 나라의 버팀목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피자와 통큰치킨 논란. 서민인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한 번 쯤 나의 선택이 상생과 공정한 사회를 위해 올바른 결정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동일한 노동에 임금을 한 푼이라도 덜 주려는 대형 자본.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문제가 서민 전체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될 몫이듯, 대형 자본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자영업자에게 어깨를 걸어야 할 사람들도 또한 서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