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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이야기

아시아 청년들과 오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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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8.15 17:59:18 | 최종수정 2014.08.15 20:4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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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파! 프란치스코 / `아시아 청년들과의 오찬` 참석 대학생 朴모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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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리고 있는 충남 당진 솔뫼 성지를 방문했다. 포프 모빌을 타고 이동하는 교황을 신도들이 환영하고 있다. [사진 공동취재단]

15일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 여대생 박 모씨(24)는 차창 너머로 도로 옆에 깔린 엄나무 밭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이날 오후 1시 세종시 전의면 대전가톨릭대에서 열린 `아시아 청년들과의 오찬`에서 교황을 만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아시아 17개국에서 대표로 뽑힌 청년 19명과 함께 그토록 보고 싶던 교황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4년 전만 해도 박씨는 `오늘`을 상상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왔고, 삼키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키 153㎝, 몸무게 27㎏. 고등학생이라고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앙상하고 작았다. 눈물을 머금고 학교를 휴학해야 했다. 학교를 떠난 그는 세상과 더 고립됐다. 부모는 홀로 싸우는 딸을 눈물로 지켜봤다. 아이를 고쳐보고자 백방으로 노력했다. 좋은 음식과 약도 소용없었다. 이를 악물고 딸을 정신병원에 입원도 시켜봤다. 병원에서 딸은 더 악화됐다. 죽겠다며 자해 소동을 벌였다. 진짜 박씨에게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부모 마음도 멍이 들어갔다. 절망의 끝에서 목 놓아 울던 부모는 지인의 소개로 천주교 청소년 담당 사제를 소개받았다. "신부님, 제발 우리 딸 좀 살려주세요."

부모의 눈물 섞인 한탄을 묵묵히 듣던 신부가 입을 열었다.

"전 의사가 아니어서 따님을 살릴 능력은 없지만 친해질 수 있는 기술은 있습니다."

신부가 딸과 친해지기는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고립된 채 투병생활을 한 끝에 소녀는 심한 대인기피증에 걸린 상태였다. 신부는 3개월간 소녀를 관찰했다. 부모는 신부를 집으로 초대해 딸과 자연스럽게 친해지도록 자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딸의 말동무가 된 신부는 어느 날 소녀에게 제안을 했다.

"내년(2011년)에 스페인에서 세계청년대회가 열리는데, 너 거기 갈래?"

소녀는 무관심한 척했지만 내심 마음이 두근거렸다. 지긋지긋한 고통의 끝에서 빛을 줄 신나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신부는 "의사가 지금 이 체력으로는 힘들다고 하니 몸무게를 40㎏으로 만들어 오면 데려가겠다"고 했다. 박씨는 호기심 반, 오기 반으로 그 제안을 수락했다. 시간이 지나자 호기심은 기대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용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토록 싫어하던 병원에 제 발로 찾아갔다. 치료는 혹독했다. 하지만 견디다 보니 어느덧 몸무게는 신부와 약속한 대로 40㎏가 넘어가 있었다.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루에 수십 ㎞를 걸어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 전 세계에서 온 청년들은 가족처럼 서로를 격려했고 북돋워줬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그는 달라져 있었다. 생기와 희망이 마음속에 우물처럼 샘솟았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복학했다.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교내 마라톤대회에서 1등을 할 정도로 건강해진 그는 고교를 무사히 졸업했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 워싱턴주립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는 매일 꿈을 향해 정진한다. 요즘은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칠 수 있도록 전공을 의학으로 바꿀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대전 = 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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