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청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정치참여 약화… 대표성 위기 온다
“돈 선거, 불법선거 판칠 것… 위헌소송 불가피
정당공천제 폐지 반대 강력하게 싸우겠다”
“정당이 책임정치 회피하는 것… 대통령 공약이라도 잘못된
공약은 수정하는 용기… 필요 대통령이 결단 내려야”
“지역에서 생활 정치, 맑은 정치, 평등 정치로
인정 받는 여성의원들이 설자리를 잃게 될 것”
“여성단체와 여성의원, 학계 연대해 범국민 연대 만들자…
유권자들이 청와대와 국회, 여야에 청원해 폐지 막아야”
“2014년 지방선거 타킷으로 남녀동수연대 재발족을…
여성 대표성 위기 온다는 것은 여성대통령 명분 잃는 것”
김형준=민주당의 전체 당원 투표 결과가 참담하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가져올 재앙은 무엇이라고 보나.
김을동=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와의 단절, 돈 선거와 같은 불법 선거뿐 아니라 후보자 개인과 개인 간의 경쟁구도가 강화되면서 인물과 정책 중심의 선거보다 오히려 다른 후보자를 겨냥한 네거티브가 두드러지는 소모적 선거전이 빚어질 수 있다. 또 유권자는 검증된 후보 선택을 위해 검증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 무엇보다 여성과 청년,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정치참여가 약화돼 정치 발전이 가로막힐 수 있다.
유승희=정당공천 폐지 반대 비율이 32.3%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특히 당에서 오래 활동한 이들은 정당공천제 폐지가 말이 안 된다는 게 중론이다. 정당공천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지방선거를 치를 때의 혼란이 이미 역사적으로 다 검증됐다. 토호가 활개를 치고 돈선거와 부패정치 가능성도 크다. 정당공천제 도입 10년도 안 되어 폐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부를 것이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선진국가일수록 정당정치가 발달돼 있다. 스스로 정당을 부정하는 정당공천 폐지는 자가당착이다. 정당공천 폐지는 정당의 책임정치를 회피하는 것이다. 정당을 통해 정치를 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사항이다. 지난 대선에서 새 정치의 프레임에 기존 정당들이 말려들어 지금 잘못된 결론으로 가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해가 분명히 있지만 지금은 정당들이 자구책을 강구해서 셀프 개혁을 하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거꾸로 승자독식주의를 강화하고, 현역 프리미엄을 극대화시킨다. 지역 토호나 재력·조직력이 있는 이들의 독점이 강화된다. 도심 아파트 지역은 베드타운인데 유권자들의 판단 근거가 취약해지면 투표율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국회에서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돼 다시 논의할 때 의원들이 책임 있는 결론을 내야 한다.
토호들의 돈 정치 부활할 것
김은주=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정치 활성화에 역행하는 조치다. 지방자치 폐해의 해법이 정당공천 폐지에 있다는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정당공천을 할 때는 정당이 일차적으로 후보자 자격을 검증했고 당선된 다음에는 정당이 책임을 졌는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정책을 누가 책임지게 되나. 유권자, 즉 지역주민이 공과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김을동=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대안이 없고 무조건 폐지부터 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정당개혁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잘못됐다. 대선 공약이라며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 지방선거에서 기호 표시도 못 하고 누구든지 다 출마한다면 그걸 어떻게 선별할 것인가.
김안숙=지방선거에 정당공천제가 도입되기 전인 내천제 시절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후보가 난립하고 검증도 제대로 안 되지 않았나. 지역 토호세력들의 돈 정치가 극에 달했다. 돈 없고 조직 없는 사회적 약자들은 선거에 뛰어들 여지가 없었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정당보다 인물을 보고 투표할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내천제 당시 유권자는 후보를 검증할 수 없으니 추첨으로 1번과 2번을 뽑은 후보에게 투표하는 경향을 보였다.
2014년에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 못한다. 정당공천제에 기반을 둔 할당제를 통해 여성의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여성의원들이 한 자릿수에서 이제 20%를 달성한 시점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면 다시 한 자릿수로 돌아갈 우려가 크다. 지역에서 생활정치, 맑은 정치, 평등정치로 인정받는 여성의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여성의원들은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한다.
김형준=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로또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10명 이상 후보가 난립할 가능성이 있다. 득표율도 아주 낮을 거다. 후보 10명이 나온다고 할 때 투표율 50%에 득표율이 20∼25%에 불과할 거다. 낙선자가 당선자를 끌어내리려고 불복운동을 할 것이 뻔하다. 여성들은 지역구는 제로, 비례대표만 나올 거다. 또 당선자가 탈당해서 출마한 후 선거가 끝나면 복당할 것이다. 특히 현역단체장이 절대적인 프리미엄을 가질 것이다. 기득권을 깨고 정치개혁을 한다지만, 오히려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문제를 포장하고 있다.
김은주=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 첫째는 비례대표를 유지하자는 것은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정당공천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정당 스스로가 정당공천 폐지의 명분을 뒤엎는 역설적 상황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정당공천이 지방자치의 폐해를 가져오기 때문에 폐지하자고 했으면서 정당공천 문제가 단지 지역구에서만 발생했다는 것인가.
둘째는 지역구를 제외하고 비례대표만 정당공천을 하게 되면 공천을 둘러싼 비리와 부패는 더 악화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민주당이 정당공천은 폐지하되 정당 표방은 허락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러한 입장은 유권자의 후보자 선택을 도와주는 역할을 정당이 맡고 있음을 인정한 데서 나온 것이다.
정당이 철저하게 책임정치를 할 수 있도록 정당개혁을 해야지, 정당공천 폐지라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국민에게 정당정치가 지방자치 폐해를 부른 것으로 오인하도록 만들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곧 정치개혁이 아니라 공천제도를 비롯한 정당개혁이 곧 정치개혁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강도 높은 정당개혁이 이뤄지도록 새로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정당공천제만 폐지하면 지방자치의 폐해가 사라질 것이라는 국민의 잘못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김형준=대한민국 정당은 국가로부터 선거보조금을 받는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일상적 보조금과 선거보조금 등 두 번을 받는다. 선거보조금을 주는 이유는 의원들을 공천하고 선거 활동을 하게끔 보조해주라는 의미다. 속된 말로 ‘먹튀’, 정당이 돈은 받고 공천은 안 하겠다는 얘기다.
김을동=지방 토호들이 전횡을 휘두를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데 민주당이 전체 당원 투표로 이를 결정지었다는 것은 당권을 포기한 행위다.
김안숙=여성 정치참여 없는 정치개혁은 개혁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공천제 폐지를 반대해왔고, 여성 지방의원 모두 같은 입장이다. 지역별로 호남이나 영남지역 의원들의 정당공천제 폐지 찬성 입장도 있지만 공천 과정의 부패고리가 문제이지, 제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민주당의 당론 확정에 대해 여성의원들은 분노하고 있다. 여성의원들조차 수차례에 걸친 토론회를 통해 입장을 모았는데, 당원 역시 정당공천제 폐지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전체 당원 토론회나 설명회가 선행됐어야 한다. 그래서 민주당 여성의원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전체 당원 투표를 토론회를 진행한 후로 연기해줄 것을 요구했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기초선거에 해당되는 것이기는 하나 광역 여성의원 역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폐지 확정되면 위헌소송 불거질 것
김형준=제도와 운용의 관계를 잘 이해해야 한다. 제도가 아니라 운용을 잘못해서 폐해가 발생했는데 제도를 없애자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정당제도가 문제가 많아도 정당을 폐지하지는 않는다. 여론조사에서 국민이 혐오하는 정당 폐지를 찬성하느냐고 물어보면 90% 찬성이 나올 것이다. 그래도 제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것은 무늬만 지방자치여서다. 미국은 안전과 관련된 것을 지방자치단체장이 다 컨트롤한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서울시장이 통제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지금 중앙정부가 다 하고 있다. 교육 시스템도 그렇다. 한국계인 미셸 리 전 워싱턴 교육감도 시장이 임명했다. 우리는 교육감선거, 시장선거를 따로 하니까 싸우면서 서울시가 파행을 겪은 것 아닌가. 건설도 지방이 권력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는 전부 국토교통부가 갖는다. 한국은 90%의 권력을 중앙이 갖고 있고 10%를 지방이 갖고 있는데 이를 최소한 50 대 50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김은주=새누리당은 지난 4월 보궐선거 당시 공천을 하지 않았다. 최근 박재창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개혁특위는 기초선거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고 비례대표는 유지하되 정수를 현재의 10%에서 30%로 늘리는 잠정안을 제안했다. 새누리당도 조건부 폐지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닌가.
김을동=지방선거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새누리당이 반대한다고 국민에게 오해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춤하고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의원들이 대부분이다. 민주당에서 전체 당원 투표로 확정했다니까 일단은 받아들이지만 문제가 많기 때문에 당론이 쉽게 결정되진 못할 것이다.
여성정치 참여율이 높은 유럽 선진국과는 달리 미국은 약 70%에 해당하는 주가 정당 참여를 금지하고 있고 4분의 3 이상이 정당표방금지원칙을 채택하고 있는데, 미국 하원의 여성의원 비율은 약 18%에 불과하다(434명 중 77명). 거의 한국 수준이다. 그런데 스웨덴 등 정당공천제가 있는 나라는 거의 50%가 여성의원이다. 정당공천제가 없다면 여성들의 참패는 말할 것도 없고 위헌이므로 반드시 통과되는 순간에 위헌소송이 불거질 것이다. 마치 마녀사냥 하듯 이렇게 된 것은 문제다. 정당공천제 폐지의 폐해를 국민에게 홍보해야 한다.
김형준=스웨덴은 의원 349명 중 310명을 28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뽑는다. 39명은 비례대표를 뽑는다. 28개의 권역은 철저히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로 운용된다. 각 정당이 권역에 명부를 만들고 득표로 배분한다. 우리나라같이 소선거구제로 운용되는 지역구는 없다.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기초의원에 한해 지역구 제도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대선거구제와 비슷한 권역별로 비례대표를 뽑는 것을 검토할 만하다.
스웨덴은 비례대표 명부 순위를 국민이 바꿀 수 있는 자유명부제를 채택하고 있다. 리스트만 제출해놓고 순위는 최종적으로 국민의 선호에 따라 1번, 2번 식으로 정해진다. 정당이 번호를 정해 후보를 내는 한국과 다르다. 이런 자유명부제가 여성친화적인 제도다. 여성들이 지역구에서 남성보다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순위 변동이 가장 많은 게 여성이다.
독일은 정당명부를 만들 때 순위가 어떻게 결정됐는지를 100% 녹음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정당명부제 비례대표를 채택하고 투명하게 운용한다면 선거 과정의 혼탁을 막을 수 있다. 현역 의원이나 현역 당협위원장이 공천에 개입한 사실이 밝혀지면 다음 공천에 일차적으로 배제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투명한 감시시스템을 만들면 정당공천이 왜 문제가 되겠나. 지방선거 정당공천에 비리가 있다면 국회의원선거는 공천 비리가 없나. 그러면 국회의원도 공천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여성계와 여성의원들이 이 문제를 빨리 공론화해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에서 황금시간대에 공개토론을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김은주=2009년 모든 여성단체들이 ‘2010 지방선거 남녀동수연대’를 만들어 운동을 해서 공직선거법 제47조 제5항을 신설했다.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기초·광역의회 의원 선거 시 1인 이상 여성 후보를 공천하도록 의무화했다. 2014년 지방선거를 타깃으로 남녀동수연대를 재발족해 기초선거 정당공천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하반기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정당공천 폐지의 폐해에 대해 널리 알리고 여성 대표성의 위축을 조장하는 민주적 선거제도는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김형준=여성단체와 여성의원들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반대 범국민연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비롯해 어떤 방법으로든 이 문제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알려야 한다. 이후 유권자들이 청와대나 국회, 여야에 청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정당공천제 폐지가 정당정치를 약화시킬 수 있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이야기했다. 안철수 의원이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당 후보와 공동발표한 ‘새정치공동선언’에 포함됐던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적극 반대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딜레마를 안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 대표로 공천을 좌지우지했기 때문에 공천제 운용을 잘못했다면 본인이 잘못한 것처럼 여겨질 수가 있다는 점이다. 여성의원들이나 여성단체가 대통령과 면담해 대통령의 공약 실천 의지를 바꾸도록 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공약을 했지만 이 상황에 대해 명쾌하게 이해하고 공천을 폐지한다고 제시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대통령 공약이므로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논리 아니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통 12월, 올해 정기국회 마지막에 정치개혁특위가 최종적으로 법을 통과시킨다. 이제 시간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김을동=정당 내부에서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언론사 토론을 통해 이를 알리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
“목욕물 버리자고 아기까지 버리나”
유승희=정책결정 사항을 전체 당원 투표로 결정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논의도 안 된 정당공천제 폐지를 전체 당원 투표로 결정지은 것은 시기적으로 너무 앞서갔다. 정당공천제 폐지에 대해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해야 한다. 많은 당원이 정당공천을 폐지해선 안 된다는 데 공감했다. 정당 공천을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전체 당원 투표를 하다보니 여론조사 결과와 비슷하게 나온 것이다. 만약 군가산점제에 대해 광범위한 여론조사를 한다면 이것도 반대 의견이 다수가 나오겠지만, 위헌이기 때문에 추진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당공천제도 선거학회와 정치학회 등에서 위헌 입장을 내놓은 사항이다. 대통령 공약이므로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다는 논리인데 잘못된 공약이면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려운 때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한다.
김은주=새누리당이 용기를 내야 한다. 대통령과 독대를 해서라도 정당공천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에 여성 대표성이 10여 년 전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여성대통령의 명분을 상실하는 것이다. 선거운동 기간 준비된 여성대통령임을 자임했으면서 여성의 대표성 위축을 초래하는 제도 개선에 방관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여성대통령으로 여성이 대표자가 될 동등한 권리 보장을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김형준=박 대통령이 내건 아주 중요한 공약이 실질적 양성평등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2017년 정부위원회 여성 비율을 40%로 만들겠다고 밝혔는데, 이를 위해선 우선 여성 풀(Pool)이 늘어나야 한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을 폐지하면 여성 대표성이 와해된다. 그러니까 대통령의 두 가지 공약이 상충하는 것이다. 당연히 공약의 우선순위와 시대정신을 봐야 한다. 평등민주주의 실현이나 여성의 삶의 질 개선이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보다 훨씬 상위의 가치다. 이런 상위 가치를 실현시켜야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대국민 약속을 지킬 수 있다.
김은주=여성 대표성 분야에 민주당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여성대통령을 배출한 새누리당에서는 여성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한다.
유승희=근본적으로 민주당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생긴 문제이기는 하나, 시민사회단체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여성단체가 결단력 있게 정당공천 폐지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줬다면 힘이 됐을 것이다.
여성단체가 정당공천 폐지에 대해 적극 나서지 않았던 것은 아마 국민 여론과 시민단체의 입장을 의식한 것 같다. 새 정치의 프레임에 딱 물려서 정당정치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 새 정치인 양 착시현상이 생긴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 프레임에 걸려 정당이 정치를 포기하는 선언을 해야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새 정치일까.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되게 하는 게 새 정치 아닌가. 올바른 정당정치, 깨끗한 정당정치,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당정치가 새 정치다. 그런데 아이를 목욕시키다 더러워진 물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다 버리는 꼴이 됐다.
김형준=여성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정당공천을 강화하고 지역구 30%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 남성지배 구조를 영속화시킬 것이 우려된다. 지금은 여성 풀(pool)이 너무 적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풀을 크게 만드는 쪽으로 가야 한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여성 할당을 해야 한다. 하지만 영구적으로 하자는 것은 아니다. 30년 지나 여성 풀이 충분하면 할당할 이유도 없다.
유승희=지난번 당무위원회에서 당헌에 지역구 후보의 30%를 의무 공천하도록 하는 규정을 포함시켰다. 그때 웃통 벗고 혈투를 벌였다.(웃음) 치열한 공방을 거쳐 통과 시켰는데 이번에 완전히 도루묵 된 거다. 최고위원회에서 당원투표 하기 전에 설전을 벌였다. 여성이 최고위원의 30%가 됐더라면 덜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을동=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는 절대 안 된다. 만약 정치흐름 속에서 폐지가 된다면 정당사에 역행하는 것이다. 책임정치가 실종될 것이다. 국민을 위해 폐지 반대 입장에서 강력하게 싸울 것이다.
유승희=정당공천제 폐지 반대 홍보활동 때문에 이의 제기를 두 차례 받았다. 선거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정당공천제 폐지의 폐해를 알리는 문자를 돌리는 데만 500만원을 썼다. 사실은 전국여성위원회가 여성정치발전기금을 받아 활동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금을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 것인데 개인적으로 부담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당원들에게 정당공천제 폐지의 폐해가 크고 실질적으로 당을 얼마나 취약하게 할지 계속해서 호소할 것이다.
당 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역사를 다 안다. 2006년 정당공천제가 처음 시행되고 10년도 안 됐다. 여성 정치인들을 20% 넘게 진출시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라 당을 위해서도 막아야 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다. 여야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 된다. 정치는 항상 국민과 함께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반보 앞서는 어려움도 감수해야 한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필요할 때는 반보 앞서야 하고 그것이 책임정치라고 본다.
김은주=여성의 정치참여는 대표자가 될 수 있는 동등한 권리 보장을 목표로 한다.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하기 위해선 이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는 민주주의 국가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 측면에서 본다면 잘못된 판단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돼 활동할 때 여성계가 힘을 모아 여성의 대표성 증진을 위한 연대활동에 집중해야 한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마지막 기대 걸어
김형준=우선 여야 여성위원장은 무조건 정치개혁특위에 들어가야 된다. 특히 정치개혁특위의 30%를 여성으로 채울 수 있게끔 당 대표를 압박해야 한다.
김을동=민주당 여성의원 중에선 정치개혁특위에 누가 들어갔나.
유승희=김영주 의원 한 명만 들어가 있다.
김을동=새누리당은 한 명도 없다.
김형준=그것부터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당사자들이 배제되는 것은 안 된다. 여야 여성위원장들은 당연직으로 들어가야 된다. 이번 기회에 청원제도가 적극 활용되길 기대한다. 국회에 자꾸 청원하고, 청와대에 청원하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청원해야 한다. 이 문제를 적극 공론화해야 한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를 유지할 경우 예상되는 폐해와 관련해 산뜻한 대안을 만들어서 공청회도 하고, 나아가 여야 여성위원장이 공동으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강하게 반대하니까 여성의원 세 분이 함께 공동 기자회견도 하고 법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정당에 맡길 게 아니라 정당법으로 만들어 법제화해야 한다. 지금 공천법안을 당원당규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걸 빨리 정당법으로 법제화해야 한다. 선거법으로 만들어도 좋고…. 공천 과정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 녹취록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내지 않으면 아예 접수를 거부해버리는 방식으로 해야 된다. 공천 과정이 투명하면 제도를 없애자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김은주=공직선거법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정당법 개혁을 통해 새로운 답을 제시해야 한다.
김형준=미국은 중요한 법안 심사를 할 때 합동위원회를 연다. 여성문제와 관련해 정치개혁특위가 여성가족위원회의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전향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김은주=민주당에서 내놓은 여성명부제는 소수자를 배려하지 못한다. 리스트만 따로 만들지, 선거는 지역구 선거와 똑같이 한다. 여성명부에 들어가는 여성들도 지역구 선거운동 하듯 운동을 한다. 자금과 조직력을 갖춘 힘있는 여성들만 당선되지, 여성 내의 소수자는 여성명부제 틀 안에서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그저 여성 수 30%만 확보하는 것일 뿐 다양한 계층의 여성을 대표하지 못한다.
유승희=우리도 민주당 내에서 절대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당론으로 결정된 바 없다. 만약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가 확정될 경우 비례대표 50% 확대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비례대표를 50% 확대하고 이 중 50%를 여성으로 하면 최소한 25%는 확보된다. 나머지 50%는 현재의 중선거구제를 소선거구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 선거구에서 한 명씩만 뽑는 소선거구제를 하면 지역구 의원 숫자를 줄일 수 있다. 선거구는 늘어나되 지역구 의원 숫자는 줄어든다.
김안숙=최근 전국여성지방의원네트워크와 각 당 여성지방의원협의회, 전문가들이 모여 대안을 모색한 바 있다. 답은 남녀동반선출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대안으로 내놓고 있는 여성명부제나 여성비례대표 확대 등은 또다시 여성을 고립시키게 될 것이다. 비례대표나 여성명부로 당선된 후 지역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력단절이 심해질 것이고 선거구 규모가 큰 만큼 선거비용 문제에서도 어려움이 클 것이다. 여성명부제나 비례대표 30%안을 채택할 경우에도 여성 의원 비율은 20% 수준으로 현재보다 크게 확대되지 않는다. 이것은 여성 정치참여 확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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