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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30일 Facebook 이야기

서초구의원김안숙 2012. 6. 30. 23:59
  • 간 큰 남자

    “이게 밥이야 쌀이야? 무슨 밥이 이렇게 설었어? 내 치아 약한 거 아는 사람이 왜 이래? 난 도저히 이 밥 못 먹겠으니까, 다시 새로 해줘. 그리고 반찬도 좀 새로 해서 내 줘. 이 반찬들 어제, 그제랑 똑같잖아.”

    나는 수저를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며칠동안 쌓였던 불만이 아침식사 중에 폭발한 것이다. 아내는 며칠째 계속 같은 반찬을 내왔다.

    콩나물무침이며 가지무침이며 된장찌개가 먹던 그대로 냉장고에 쏙 들어갔다가 끼니때마다 냉장고 냄새를 풍기며 도로 나온다. 채소 요리는 먹기 직전에 조리해야 신선도가 높고, 맛도 좋은데 시들어서 흐물흐물 해진 채소를 씹고 있자니 소가 되새김질 해놓은 것을 먹는 것만 같다.

    된장찌개도 벌써 며칠째 삼탕 사탕 데우고 있어 소태가 되어 있다. 이런 밥상 앞에선 식욕이 생길 리 만무다. 게다가 어제 예산 안 챙겨 준다고 떼거리로 몰려와 항의하는 민원인과 옥신각신했더니 짜증도 오를 만큼 올라 있었다.

    나는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 보따리를 밥상 위에다 질펀하게 풀어 놓았다. 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아내가 아니었다.
    “누구는 맛있는 반찬 안 해 주고 싶어서 그런 줄 알아요? 제가 집구석에 붙어있을 시간이 있어야지요. 당신 데리고 다니느라 내 몸도 피곤하다고요.”

    아내도 성난 불독처럼 이마에 핏대를 세우고 그동안 쌓였던 울분을 토해 냈다. 구구절절한 아내의 말들이 식은 밥상 위로 우수수 떨어졌다.

    요즘 무슨 행사가 그리 많은지, 하루에 네다섯 곳 방문은 보통이고 심지어 아홉 곳을 돌아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 모든 일정을 아내가 소화해주지 않으면 나는 남의 집 방문은커녕 내 집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렇게 나와 함께 이른 아침에 나가면 밤늦게 돌아오기 일쑤다. 언제 빨래를 하고, 집안청소를 하고, 요리까지 한단 말인가?

    남자는 귀가하면 왕 노릇을 하지만 여자는 밖의 일을 하고 귀가해도 왕 노릇은커녕 왕 노릇 하는 남자의 수발들기 바쁘다.

    아내는 나를 수행하는 일 말고도 개인생활이 많다. 성당의 구역장, 빈첸시오 부단장, 성가대, 교리 선생 등등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겁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아들을 아무 탈 없이 키워준 고맙고 소중한 아내다.

    외국에 나가봐야 애국자가 되고, 텅 빈 집에 며칠 있어봐야 아내의 빈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안다. 게다가 요즘 세상에 남편에게 기죽고 사는 여성이 어디 있는가? 오히려 아내 앞에서 꼼짝 못하는 남편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이다.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에게 시집온 것만도 감지덕지인데 나는 반찬타령에 구박까지 해 댔으니 내 간이 요즘 남자들의 간보다 크긴 큰가 보다.

    설전 뒤 우리는 냉전모드에 들어갔다. 아내는 베게를 집어 들고 아들 방으로 향한다. 게다가 때가 되어도 밥상을 차려줄 생각을 안 한다.

    나는 반 강제성 금식투쟁으로 항전한다. 식음도 전폐한 영양가 없는 소모전이 계속된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다보니 슬슬 몸과 마음이 약해졌다.

    도대체 간이 얼마나 크기에 이런 배짱을 부린단 말인가? 냉각기가 길면 길수록 상처의 골도 깊다. 그 놈의 알량한 자존심이 뭐길래 사투를 벌여야 하는가?

    차라리 간 크기조절 기능이 있으면 간을 축소시킬 텐데……. 그렇다고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수술할 수는 없지 않은가.

    뱃속에선 먹을 것을 달라고 오케스트라 연주를 해대고, 사고력은 이미 두 손 들고 투항태세다. 나는 항복 적기를 저울질 한다.

    나는 간을 최대한 축소시켜 아내에게 괜한 심보를 부려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빈다. 오늘따라 저녁상이 푸짐하다. 맛있는 갈비찜이 올라오고 신선한 야채샐러드가 젓가락에 걸린다.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이다.

    서양의 어느 학자는 “가정을 인간이 만든 제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요, 인생의 영원한 안식처다. 행복한 가정만이 인생의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부부애는 서로 동고동락하면서 인생의 궂은일과 어려운 고비를 이겨내 온 깊은 정이다.” 라고 했다.

    대한민국 남성들이여! 간 크기조절장치 하나씩 가지고 다닙시다.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지구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나의 행복을 위하여…….

    /달리는 희망제조기, 사회복지학 박사 송경태
  • → 김안숙 ㅋ 재미있군요
  • → 김안숙 그런의미에서 우리 여행을 떠나볼깔요♥저의집 아이들 아빠가 잘혀도 잠시 그냥 쉬고 싶네요♥멏일만이라도 ~~~
  • → 김안숙 부부만큼 동고동락할 사람없다는 것 나이들어 깨달았죠 ㅎㅎ
  • → 김안숙 결국 인생의 마지막은 배우자와 함께해야 행복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 → 김안숙 어구! 찔리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