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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이야기

서초 경마도박장 인허가 의혹

서초 경마도박장 인허가 의혹
 
소미연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도박장(마권장외발매소) 신축 사업을 둘러싸고 정ㆍ관계가 발칵 뒤집혔다. 서울 서초동 1672-6 부지를 매매하고 건축허가를 따내는데 성공했으나 이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당초 이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서초구가 지난해 실시된 6ㆍ2 지방선거 이후 구청장이 교체되면서 건축허가가 전격 이뤄졌다는 지적에서다. 뿐만 아니다. 마사회가 당시 땅주인이었던 K건설에게 인허가 책임과 민원을 떠넘기는 계약서를 쓰고 비밀리에 사업을 추진한 정황이 드러났다. 앞서 농림수산식품부가 마사회의 사업승인을 내준 배경도 석연치 않다는 분석도 많다. 로비 의혹과 정치권 외압설이 제기되는 이유다. 따라서 서초구의 수사의뢰가 있기 전부터 검찰에서 내사를 벌여온 것도, 특히 이번 사건을 일반 형사부가 아닌 강력부에 배당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수사 결과에 따라 사건이 단순 의혹에 그치지 않고 각종 이권이 개입된 권력형 사건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마권장외발매소에서 회의장 용도로 변경ㆍ신청해 건축허가 ‘눈속임’

진익철 현 구청장-박성중 전 구청장의 공방으로 고승덕 의원 ‘불똥’


마사회의 마권장외발매소 신축 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2009년 12월14일부터다. 이날 마사회는 청담동에 있는 마권장외발매소를 서초동으로 이전하는데 농림수산식품부의 승인을 받았다. 이후 마사회는 서초동 1672-6 부지의 1232㎡(약 373평)를 소유한 K건설과 접촉했다.

양측의 교류는 2010년 4월에 작성한 매입확약서로 정리됐다. K건설이 소유한 땅에 지을 11층짜리 건물 중 10개 층에 마사회 대신 서초구로부터 마권장외발매소가 들어설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내는 게 계약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단, 마권장외발매소 설치 및 신축공사와 관련해 발생한 제반 민원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도 마사회에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없도록 협의했다. 대신 이 계약 조건이 모두 이행됐을 시 마사회가 이 부지를 1,200억원가량에 매입하기로 약속했다.


비밀리에 사업 추진 ‘들통’


이 같은 조건을 K건설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당초 K건설은 해당 부지를 2009년 7월 609여억원을 주고 매입했다. 서초구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내면 609억원에 산 땅을 마사회에 1,200억원가량으로 되팔아 600억원에 가까운 차액을 남길 수 있다. 건축비를 비롯해 각종 금융 조달비용과 접대 비용을 빼더라도 최소 200여억원의 차익이 남는 대형 이권사업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양측의 협의 하에 작성된 계약서는 K건설에게 거액의 차익을 남기고, 마사회는 논란이 일 수 있는 마권장외발매소 신축 사업을 비밀리에 추진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서초구의 건축허가는 쉽게 나지 않았다. 지난해 1월20일 서초구 건축위원회의 심의에서 주거ㆍ교육시설 밀집지역이라 건축허가가 불허됐다. 단, 서초구는 마권장외발매소가 아닌 다른 용도로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K건설은 그해 6월18일 건축 용도를 회의장 용도로 변경한 뒤 건축허가에 대해 재신청했다. 6ㆍ2 지방선거에서 진익철 서초구청장이 당선된 지 16일 만의 일이다. 그로부터 13일 뒤인 7월14일 K건설은 건축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반쪽짜리 허가였다. 11층 건물 중 6개 층에만 마권장외발매소를 지을 수 있게 된 것. 때문에 마사회는 당초 K건설에 지급하기로 했던 1,200억원 대신 690억원만 지급하고 2010년 12월 부지를 사들였다. 이로써 K건설은 서초동 부지를 매입한 지 불과 1년6개월 만에 80억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건설은 마사회 측에 항의했다. “뒤통수를 맞았다”고 토로할 정도다. 결국 K건설은 마사회를 상대로 서초동 부지와 관련된 사업 비용 200억원가량을 더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사회와 K건설의 소송으로 비화된 서초동 마권장외발매소 건축허가권은 전ㆍ현직 서초구청장의 공방으로 이어졌다. 사실상 책임론 전가다. 현재로선 진 구청장이 불리한 상황이다. 당초 이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던 서초구가 현 구청장의 취임 이후 입장을 달리했다는 게 문제가 됐다.

더욱이 전임인 박성중 전 서초구청장 재임 시절에 건축심의가 통과됐어도 신임인 진 구청장이 충분히 건축허가를 보류할 있다는 점에서 의문이 발생하고 있다. 논란이 될 게 뻔한 건물을 취임 13일 만에 무리하게 인허가를 내줬다는 것. 마사회와 K건설 측의 로비 의혹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앞서 박 전 구청장은 “지난해 6월 퇴임 직전까지 이 사업과 관련된 인사들이 마권장외발매소 용도로 허가를 내달라며 집요하게 요구했으나 거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진 구청장은 “로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마권장외발매소 인허가는 박 전 구청장 재임 시절에 관련 절차가 완료된 사항이라는 게 진 구청장 측의 설명이다. 지난해 6월 인수위원회가 활동하던 당시에는 결재 권한이 없었고, 이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도 없었다는 것. 취임 이후 사안에 대해 알게 됐을 땐 이미 건축허가 처리를 위해 서울메트로 등 5개 관련기관과 토목과 등 9개 관계부서가 협의절차 및 서류보완에 나선 상태였고, 시일이 소요되면서 박 전 구청장 재임기간 내인 지난해 6월30일 이전까지 협의 완료되지 못해 대신 행정 처리를 했을 뿐이라고 진 구청창 측은 설명했다.


“전임 구청장의 공천 분풀이”


그러나 박 전 구청장의 반박 또한 만만치 않다. 공천에서 탈락한 이후부턴 ‘식물구청장’에 불과했고, 이에 따라 전권은 진작부터 진 구청장에게 있었다는 것. 때문에 진 구청장과 박 전 구청장의 공방은 현직 지역구 의원인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에게 불똥이 튀었다. 고 의원이 진 구청장의 공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고 의원은 지난해 6ㆍ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 공무원 출신인 진 구청장을 지원해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진 구청장이 고 의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서초구청장 공천을 받았던 만큼 고 의원 측의 이런저런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마권장외발매소 건물 설계를 수주한 S건축의 이모 대표와 고 의원의 관계도 정·관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 사업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이씨는 서초구청에서 건축 인허가 업무를 담당하는 건축과장과 도시관리국장 등을 지낸 뒤 1998년 퇴직한 인물로, 서초구청 건축담당 공무원 중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만큼 마당발로 통한다. 여기에 서초을 지구당 부위원장을 지낸 이력으로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두텁다는 후문이다. 지구당 위원장인 고 의원의 연루설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고 의원은 항간에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 적극 반박하고 있다. 서초구의 인허가 과정은 그간 사이가 소원했던 박 전 구청장 시절에 진행된 일이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 더불어 지구당 부위원장이었던 이씨와의 관계도 고 의원은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부위원장으로 활동하지 않은 지 오래돼 당원협의회 명부에서조차 삭제됐다는 것. 고 의원 측은 “지난해 6ㆍ2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전 구청장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분풀이로 최근 내 이름을 들먹이는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농림부가 마권장외발매소를 서초동으로 이전하는데 승인을 내준 배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도심 생활시설 밀집 지역에 대형 도박시설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무리하게 사업 승인을 내준 경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 더욱이 농림부는 마사회의 사업 추진에 한 번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오히려 사행산업을 관리감독하는 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의 방침을 어기면서까지 승인을 내줬다.

앞서 사감위는 2008년 11월 ‘도심의 장외발매소는 생활 밀집지역과 격리시키는 원칙을 적용한다’는 사행산업 종합대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농림부가 승인한 서초동 마권장외발매소 부지는 초등학교와 입시학원, 아파트 단지, 법원 등이 둘러싸고 있다. 사감위가 문제점이라고 지적한 모든 요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이에 농림부에선 서류 검토와 현장 실사 등을 실시했지만 특이한 문제점이 없어 사업 승인을 내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농림부 사업 승인 ‘아리송’


한편, 마사회는 “정부가 사행사업을 벌인다”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11곳을 비롯해 전국 32곳에서 마권장외발매소를 운영 중이다. 2006년 사행성 오락게임인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지면서 비난여론이 일자 마권장외발매소 신설계획을 전면 중단했지만, 지난해부턴 다시 마권장외발매소 건축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논란으로 인해 공기업인 마사회는 민간 건설사를 앞세워 주택가 인근에 대형 도박장 건립사업을 암암리에 추진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논란이 일자 서초구는 “허가한 것은 회의장 건축”이라면서 건축물 용도가 바뀌면 승인을 불허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지난 8일에는 인허가 주체인 농림부에 마권장외발매소 이전 승인을 취소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앞서 지난달 7일에는 국토해양부와 서울시에 앞으로 건축물 허가 때와 다른 용도변경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건축법 개정안을 건의했다는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