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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

오바마 맹자를 말하다

오바마 맹자를 말하다
박재희

세계를 끌고 나가는 미국과 중국은 매년 돌아가며 경제전략 회의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 1차 중미 경제 전략 회의에서는 미국 지도자들이 중국의 고전 명구들로 화려하게 사용하여서 화제 되었습니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등 미국의 장관들이 중국 고전을 인용한 것은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국이 중국을 보는 눈은 공산당 독재, 인권 탄압, 불법복제 등이었습니다.
이제 확실히 세계패권을 주름잡는 미국이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진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공산당 독재로 인식되던 중국이 이제는 미국과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동반자 관계임을 미국이 인정한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맹자(孟子)》의 〈진심(盡心)〉하(下)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하였습니다. 
'산에 난 조그만 오솔길도 갑자기 사람이 모여들어 이용하기 시작하면 큰 길로 변한다(山徑之蹊間 介然用之而成路).
그러나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가득 덮여 길이 없어지고 만다(爲間不用則茅塞之矣).'

참 적절한 문장의 인용입니다.
자세히 풀이하자면 山徑之蹊間, 뫼 山자에 오솔길 徑자, 산속에 난 작은 오솔길도, 介然用之, 개연은 여기서 갑자기란 뜻입니다. 갑자기 사람들이 이용하기 시작하면 成路라! 길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爲間不用 그 길을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띠 茅자에 막힐 塞, 풀로 뒤덮여 버릴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조그만 산길도 갑자기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기 시작하면 바로 큰 길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끊기면 바로 바로 풀로 뒤덮여 길이 사라지고 만다는 뜻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의 관계 역시 자주 왕래를 통해서 상호 소통의 큰 길을 만들자, 사람이 자주 만나야 정도 드는 법, 왕래가 드물다 보면 우리의 관계가 소원해 질 수 있다.
이런 의미로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 측 대표단에게 자신의 뜻을 맹자를 통해 전달한 것입니다.

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언급 안한 맹자 원문 마지막에 나온 한 구절입니다.
‘今茅塞子之心矣라!’ ‘그런데 지금 그대의 마음은 풀로 뒤덮여 무성하구나!’ 해석 여하에 따라 중국이 기분 나빠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맹자가 이 말을 한 것은 그의 제자 고자(高子)를 꾸짖으려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 구절을 ‘나는 자주 왕래를 하여 길을 만들려고 하는데 그대 마음에는 풀로 뒤덮여 나와 왕래할 적극적인 의사가 없다!’ 라고 해석해도 가능합니다.

여하간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상대방이 익숙한 고전에서 인용하여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외교적인 측면에서 상대방 문화에 대한 존경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태산도 옮길 수 있다는 ‘인심제(人心齊) 태산이(泰山移)’라는 비교적 구어체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미국과 중국의 일심동체의 협력관계를 표현하였습니다.
또한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비바람이 불어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면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손자병법에서 유래된 풍우동주(風雨同舟)의 성어를 중국말로 인용하여 중국측 대표부들 감동시켰습니다. 
그때 중미전략경제대화는 한 마디로 중국고전의 화려한 수사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 미국의 지도자가 되려면 중국 고전 몇 구절은 반드시 알아야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세상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월가의 투자 은행들이 문을 닫고,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은 심각한 진단서를 받고 어찌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은 혼자서 세계를 끌고 가기에는 버거워 보입니다.
미국은 중국에서 만든 제품의 최대 소비시장이 되었고, 중국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자 미국제품을 만드는 공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두 나라는 함께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중국인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주은래(周恩來)는 지난 시절 미국과의 외교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쳤습니다.
구동(求同)! 우리 서로 같은 것을 추구하여 동반자로 나아가자!
존이(存異)! 우리 서로 다른 의견은 담아 놓았다가 나중에 이야기하자!
일찍이 중국과 미국의 동반자로서의 상호협력 철학을 설파한 외교원칙이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동양과 서양의 경계는 무의미합니다.
서양은 물질이고 동양은 정신이라는 근대의 편견 가득한 오리엔탈리즘의 이분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 보입니다.
과학과 철학이 만나고, 예술과 경제가 만나고, 동양과 서양, 좌익과 우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 만남의 시대에 어느 하나만 옳다고 고집하다가는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임은 자명합니다. 

산에 난 조그만 오솔길도 갑자기 사람이 모여들어 이용하기 시작하면 큰 길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잠시라도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으면 다시 풀로 가득 덮여 길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서로 자주보고 왕래하면 반드시 큰 길이 날 것이라는 생각, 아름다운 관계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