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것만이 희망`이었던 버려진 한 아이가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 목사가 되어 10년째 노숙인들과 동거동락하고 있다.
美플로리다주 흑인 노숙인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채에스더(57, 채경자) 목사가 7일 CBS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 10년째 노숙자들을 위한 `밥퍼사역`을 이어온 사연을 털어놓았다.
채에스더 목사의 어린 시절은 참담했다.
전북 군산에서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아빠와 오빠가 죽고 집안까지 망하게 한 딸"이라는 구박을 받으며 자랐다. 모친은 깡통에 밥을 얻어와 식구의 끼니를 해결해준 그를 발가벗기고 회초리로 때렸다.
당시 맞아 터진 고막으로 지금까지 채 목사는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 열한 살 때 어머니마저 가출해, 친오빠를 찾으러 서울로 상경했다. 미아리에서 노숙하다, 미장원 다방을 전전하며 식모살이를 했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한남동에 있는 한 고아원에 들어갔다.
채 에스더 목사는 방송에서 "가족들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쥐약을 먹고, 동맥을 끊고 수차례 자살시도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어느 날, 고아원을 찾아온 미국 사람의 도움으로 도미. 하지만 그곳의 삶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샌디에고, 라스베가스, 콜로라도 주를 돌며 청소 일과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파티 종업원으로 일하던 때 육사를 졸업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내가 청소하던 장교 숙소의 총각장교였다."
장교 남편을 만난 뒤로 그의 인생은 180도 뒤바뀌었다. 부자동네 큰 맨션에서 호화로운 가구와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를 배우나 명문가의 딸로 알았다. 남편은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를 신학대학교까지 졸업시켰다.
현재 채 에스더 목사는 플로리다 잭슨빌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10년 전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다 `홈리스` 흑인을 우연히 만나 자신이 신던 신발을 건네준 게 노숙자 사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이날 방송에서 채 목사는 "어린 시절 거지와 고아로 미국에 와서 고생했던 옛 일을 기억하며 사랑의 빚진 자의 마음으로 홈리스 교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공원 큰 나무 밑에서 열린 첫 예배. 첫 주일엔 30명이 모였다. 노숙자 교회는 일반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똑같았다. 성찬식도 길에서 드렸다. 서툰 영어설교와 동양여자라고 깔보고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빈정대는 이들도 있었다.
"여름에는 잘 씻지도 않는 그들을 모아놓고 설교할 때 머리가 아파올 때도 있었다"는 채 목사는 마약파는 아줌마로 오해를 당한 적도 부지기수였다.
채 에스더 목사는 여전히 주일마다 공원을 찾아간다. 10년 동안 노숙자들에게 줄 음식 300인분을 혼자서 만들어 한주도 거르지 않고 차에 싣고 와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300여명이 넘는 흑인 노숙자들은 느티나무 아래 `노방교회`로 모이고, 그들은 채 목사를 `공원목사`, `어머니목사`로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