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정한 목표에 최선을 다 했을 때 그 결과가 좋게 나오길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것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추진한 일에는 결과가 더 좋아야 한다. 그것이 일을 추진한 주체인 사람에게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고 결과가 형편없이 나왔을 때, 그것은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송구스런 일이 된다.
지난 4.11 총선 이야기이다. 예측이 뻔히 되는데도 일부 목사와 장로 등이 그리스도(기독)의 이름이 들어간 당을 만들어 국회의원 선거에 임했다. 어거스틴(Augustine)의 말처럼 그리스도인은 이중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 나라와 하늘나라가 그것이다. 따라서 굳이 세상사에 초연하게 살 필요는 없다. 특히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오늘날 그런 삶을 시대가 용납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씀에 기초해서 세상일에 적극적으로 관계하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신앙인의 자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을 만들어 세상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은 위험천만(危險千萬)하다. 이건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어려움에 직면하기 쉽다. 권력을 잡아도 문제이고 잡지 못해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정당의 최종 목적은 정권 획득이라는 것은 정치학의 기본이다. 정당을 만들었으면 그것이 어떤 이념과 정강정책을 가졌든 궁극적으로 정권을 잡겠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중세의 신정국가(神政國家)가 아닌 이상, 또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신교국가(新敎國家)가 아닌 이상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당선시키고 세속 정치에 힘을 발휘하겠다는 것은 시기상조(時機尙早)이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이번 총선에 기독교의 일부 사람들은 두 개의 기독 정당(기독자유민주당과 한국기독당)을 만들어 총선에 임했다. 양당 체제가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에서 두 개의 군소 기독교 정당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유치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얄팍한 정치 셈법이다.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얼마이며 그들의 일부만 찍어 준다 해도 원내 진출은 무난하다는 무지개 구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때 1,200만 그리스도인을 자랑했고, 지금은 아무리 줄여 잡아도 기독교인이 800만 명은 족히 될 터인데, 이들 중 일부만 기독당을 선택해도 원내 진출은 무난하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총선 직전의 한 여론 조사 결과도 긍정적 선거 결과를 기대하게 만든 것 같다. 즉 설문에 응한 자 중 17%가 기독당을 찍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여론 조사의 오류를 믿은 과오이다.
난 기독교인이 현실 정치에 관계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독(그리스도)이란 이름을 당명(黨名)에 사용하면서까지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것 또한 동의할 수 없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리 믿는 자들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알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없다는 것도 믿는다. 그런 하나님이 기독 정당을 만들어 현실 정치에 뛰어 들게 했다면 그 결과는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와야 이치(理致)에 맞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독자유민주당은 총 유권자의 겨우 1.2%만의 지지를 받았을 뿐이다. 800만 그리스도인 중 25만 명이 조금 넘는 숫자가 기독당을 지지한 것으로 투표 결과가 나왔다.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먼저 교계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당을 꾸리고 출마시킨 일부의 사람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는 다 용서해 주시더라도 성령을 훼방한 죄는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당을 만들어 총선에서 출마, 창피를 당한 선거 결과는 능치 않음이 없으신 하나님을 욕보인 것과 같다.
기독자유민주당의 낮은 지지율은 여러 가지 이유에 기인할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그들이 내건 슬로건이다. 기민당이 내건 슬로건은 기존 정당들의 정강 정책에 해당될 것들인데, 이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닌 반대 세력에 대한 팽배한 악감정의 발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도 정당의 슬로건이 극우단체의 그것과 진배없어서는 국민의 마음을 살 수 없다. 종북 좌파 척결이니 전교조 배척 등의 구호는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더욱이 한미 FTA 찬성과 제주도 강정 미 해군기지 건설 찬성 등의 구호를 볼 때 과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가 의구심이 든다.
예수님은 만인(萬人)의 메시야이시다. 오늘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한 쪽에 기울어진 극단적인 편향 의지가 과연 기독교인이 취할 행동인가는 곰곰이 따져 보아야 한다. 성육신(成肉身)하셔서 이 땅에 초림(初臨)하신 예수님의 공생애(公生涯)를 살펴볼 때, 그분은 당시 기득권을 누리는 종교지도자들이 포함된 지배집단에 과감하게 반기를 들고 일반 민중과 더불어 그들과 교감하며 일을 하셨다. 그런 예수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신다면 극우 편향적 기독자유민주당과 한국기독당에 지지를 보내실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은행 대출을 받을 때 이율을 연 2%로 내리겠다는 제안도 웃음거리를 사기 십상이다. 돈을 빌리고 이자를 적게 주고 싶은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기독교인이라고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필 기독교인만이냐는 것이다. 도리어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는 약자들을 위해 이자 내리기 정책 제안이 더 그리스도적인 것이 아니겠는가. 은행 대출의 이율이 높다면 국민 전체를 위해서 인하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이 취할 태도이다. 이것이 현대 정당 정치에 부합할 뿐 아니라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되는 것이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기독당이 참패를 한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은 헌법에 명시된 기관이다. 일부 계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국민 전체를 생각하고 정치를 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다. 그런데 극우단체에서나 외칠 법한, 아내면 일부 넋 나간 극우 성향의 정치인이 주장할 법한 것들을 사랑을 모토로 하는 기독당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내 걸고 있으니 국민의 표가 그들에게로 갈 리가 없다. 보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들조차 그들에게 표를 주기보다 기존 정당에 던졌다는 것을 기독당 인사들은 곰곰이 새겨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이번 총선이 기독교인에게 주는 교훈이다.
강하게 권고하고 싶다. 기독교인이 정치를 하고 싶으면 기존 정당을 통해 해도 부족하지 않다. 보수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정당을 택해 정치적 나래를 펼치면 될 것이고, 진보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정치인은 진보 개혁 정당을 택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면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몇 번의 실험처럼 대표성을 갖지 못한 일부의 기독교인이 기독교 정당을 만들어 한 쪽으로 경도된 목소리를 낸다면 지지는 커녕 조롱거리밖에 안 될 것이다. 과오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 더 이상 그런 정치 코미디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목회자만큼 현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성(聖)과 속(俗)을 넘나들며 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목회자는 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문제가 복잡할 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도 당신을 매단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십자가는 이런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십자가에는 있다. 기독자유민주당을 만들어 지지율 2%에도 미치지 못해 정당을 강제 해산 당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짊어지고 골고다까지 가신 그 십자가의 일부를 지겠다는 생각으로 이젠 자중(自重)할 필요가 있다. 잘못을 저지를 수는 있다. 하지만 회개하지 않는 잘못엔 하나님의 징계가 기다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서초 홀리클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초 홀리클럽 아침조찬 - 성경공부 및 초청강사 (0) | 2012.04.16 |
---|---|
예수님의제자들... (0) | 2012.03.17 |
서초홀리 아침조찬 기도모임 참석 (0) | 2012.03.15 |
서초홀리클럽 토요성경공부 (0) | 2012.02.12 |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선출 전당대회 킨택스 (0) | 2012.01.20 |